2019. 2. 20. 14:45ㆍ서울
고려인이야기
카자흐탄에 정주한 우리민족, 고려인을 우리는 알고 있나요?1937년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머나먼 땅 카자흐스탄으로 떠나야했습니다.
스탈린 정부는 고려인들이 일본의 스파이 역활을 할 수 있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고려인들을 강제로 이주 시켰습니다.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봉도장군 < 1868~1943 > 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공원묘지에 뭍혀있는것도
고려인들의 슬픈 역사입니다.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처음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지먄,
특유의 성실함으로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한 구성원으로당당하게 발돋음 했습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은 약10만명에 이르며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살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카자흐’는 ‘자유인 혹은 변방의 사람’을 뜻하는 투르크어이고, ‘스탄’은 땅을 의미합니다.
해석하면 ‘자유인이 사는 땅 혹은 변방인이 사는 땅’이 카자흐스탄입니다.
이번 전시는 자유인 혹은 변방의 사람들이 초원의 중심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도록 모두 3부에 걸쳐 구성하였습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정착과 이동을 반복하며
살아간 민족의 문화유산과 카자흐스탄의 대초원 문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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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635호
계림로 보검, 5~6세기, 길이 36.0㎝, 경주 계림로 14호분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1973년 경주 계림로14 호분에서 황금보검< 계림로 보검>이 출토 되었다.
보석과 유리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 보검은 카자흐스탄 보로보예 출토보검장식, 중국신장 키질 석굴 제69굴 벽화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 등에서 유사한 형태가 확인된다. 계림로보검은 양날이 있는 검으로 신라 고분에서출토되는
한쪽 날만있는 <도刀>와는 형태가 다르다.
또 국내에서 석류석을 사용한 문화재는 계림로 한점 뿐이다.
계림로 보검과 신라 금제품의 차이는 과학적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4~6세기 천마총, 금관총, 교동출토 금관의 구리 함량은 1%미만인 반면에 계림로 보검의 구리 함량은 3.0~3.3%로 나타났다.
이는 2~7세기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헝거리 출토 금제품의 구리함량과 비슷하다. 계림로 보검은
광활한 초원길을 따라 신라로 전해진 동서문물 교류의 대표적인 예이다.
탁사이 쿠르간 유적의 여성 사제(司祭) 무덤에서 출토된 모자 장식입니다. 위쪽 끝에는 둥그렇게 말린 뿔을 강조한 염소 머리가 묘사되었습니다. 틀로 눌러 모양을 만든 후, 그 아래로 긴 막대 두 개를 비스듬하게 잇대어 달아 만든 것입니다. 이 장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형미와 기능성을 고려한 장인의 감각이 돋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염소의 머리와 뿔은 따로 만든 후 붙였습니다. 귀도 별도로 만들어 꽂았지요. 그래서 한 틀로 찍어낸 것보다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염소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염소의 턱 밑과 막대 끝에는 고리를 달아 드리개를 걸었습니다. 이렇게 염소나 산양으로 관모의 윗부분을 장식한 예는 이식 쿠르간에서 출토된 ‘황금인간’에서도 확인됩니다.
트르크인 조각상.
유라시아의 카자흐스탄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내륙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기후가 매우 건조하다.
또한 중앙아시아 남쪽의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서로 뻗은 높은 산맥과 고원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가로막고있다.
카자흐스탄의 건조한 기후는 이 지역에서 전개된 인류의 역사와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류는 기원전 100만년 전부터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차자흐스탄 지역은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말의 사육과 기마가 최초로 시작되고 광석의 채굴과 제련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유라시아 고대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다.이지역의 선주민은 일찍이 흑해 연안과 카스피해의 북부초원에서
이주한 인도유럽어족의 이란계 유목민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은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인드로노보문화와
베가지 -단디바이문화를 발전시켰다.
예부터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은을 선호 하였다.중세 초기부터 은세공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였고
카자흐스탄 남부 오트라르와 분지카트를 중심으로 튀르크장인이 만든 은공예품이 크게 유행하였다.
유목민은 전통적인 의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은 장신구를 착용하거나 선물하며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갔다.
결혼식 예복
유르트의 내부모습
중앙 아시아 유목민이 거처하는 천막 같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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