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 16:07ㆍ동유럽
1991년 10월 크로아티아의 내란이 치열할 때 신유고슬라비아 해군이
드브로부니크를 향해 포격을 퍼붓고 있었다.
이때 프랑스 학술원 회장 장도르 메송(당시 61세)은 "유럽 문명과 예술의 상징이 불타고 있는데도
유럽 선진국들은 팔짱을 끼고 있다.
내 한 몸 총알받이가 될지라도 이 도시는 지켜져야 한다"라고 서구 지도자들을 향해 절규하면서
범선을 타고 불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프랑스 최고 지성인의 이 한마디는 전 세계에 크로아티아의 드브로부니크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UN의 중재를 이끌어 내어 전쟁을 종식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두브로보니크로 가기가 편한 곳이었을까?
보스니아 네움에서 하룻밤을 ..
건너편 호텔 해변에 젊은이들이 음악을 틀어 놓고 소란스레 떠들어
피곤해도 잠이 얼른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겨우 한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해변으로 나가니 몽돌해변이었다. 파도가 밀려오면 도르르 소리가
낮선곳에서도 익숙함이 느껴진다.
크로아티아 스지르산 위에서 내려다 본 도시.
택시를 타고 스지르산에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 본 도시 풍경은 TV 나 사진에서 보았던
주홍색 지붕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그대로였다.
내가 이 자리에서 저 풍경을 내려다 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릴적 막연하게 생각했던 아름다운 집들이 모여있는 그래서 꿈속으로 걸어 들어 간 느낌이었다.
산 위에는 이런 엉겅퀴과에 속하는 보라빛꽃이 한창이었다.
내려다 보이는 아드리아해 짙푸른 바다가
온통 마음을 사로 잡는다.
6일을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이제는 힘들어서 다시는 긴여행은 못 다니겠다고
엄살을 부려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서쪽 파일 게이트로 들어 갔다.
렉터 궁전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렉터 궁전은 건물 안과 밖으로 15세기에
아름답게 조각을 장식한 건물인데
특히 섬세하게 조각된 기둥과 안쪽 뜰의 계단은 고풍미가 넘쳐났다.
안쪽 뜰은 여름 축제 때 공연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여러 건축양식이 혼재돼 있는 렉터 궁전은 그 정교함이 인상적이었다.
스폰자 궁전
스트라둔대로 끝에 위치한 스폰자 궁전은 큰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과 우아한 아케이드,
긴 고딕양식의 창문이 조화를 이룬다.
본래 모든 무역을 취급하는 세관으로 지어졌지만 16세기 말 중앙문화센터로 바뀌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축제의 개막식이 개최되고 있으며 중앙홀은 미술관 역할을 하고 있다.
스폰자 궁전은 이름이 궁전이지 왕이 살던 곳이 아니라 처음에는 세관, 그 다음은 화폐
주조장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드브로부니크의 각 기관 자료보관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스폰자궁의 우아한 종탑은 1444년에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35m이고, 맨 위는 왕관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밑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데, 그 속에 커다란 종이 놓여 있었다.
한쪽 면에 원형으로 된 시계가 있었다.
구시가지의 중심가인 스트라둔대로 광장에 위치해 있는 성 블라이세 성당은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이곳은 도시의 수호성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에게 헌납됐으며 입구에 그의 조각상이 세워져있다. 성 블라이세 성당은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당이다.
루자광장에 세워진 마린 드루지치 동상,
영국의 세익스피어처럼 유명한 르네상스의 극작가.
코가 왜 반를거리는 것일까요?
울란도기사의 기둥. 보수를 하느라 막아 놓았다.
올드타운은 경사도가 있는 해안가에 형성되다 보니 좁은 골목과 계단이 많다.
성 안으로는 차의 진입도 불가능하다.
보통은 ‘필레 게이트’로 불리는 성의 서문이 메인 입구 역할을 한다.
필레게이트를 통과해 만나게 되는 성내 중심도로인
플라차(placa) 거리는 반질반질한 석회암 도로가 인상적이다.
플라차 거리는 ‘큰 거리’란 뜻의 ‘스트라둔(Stradun)’으로도 불린다.
렉터궁전 앞 대성당은 성모승천대성당으로 불린다.
성당 안에 있는 티티아노가 그린 성모승천 그림 때문이다.
이 건물은 지진 이후 새로 지은 것. 지진 전에 있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왕이 지어준 것.
3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리처드왕은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 아드리아해에서
폭풍을 만나 조난당했는데 두브로브니크 앞에 있는
로크룸 섬에 좌초해 목숨을 건졌다고.
당초 섬에 성당을 세우려던 것을 이곳 시민들의 꾐에 빠져 도시 안에 짓게 된 것이란다.
오노프리오 분수
16면으로 설계되 있는 오노프리오 분수는 각 면에서 물이 나온다.
구시가지의 도시성벽으로 올라가기 전에 위치해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플라챠거리 끝에 오노프리오 분수를 지나면 바로 성벽길로 들어설 수 있다
6월인데도 날씨는 무더웠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에 더운줄도 모르고
바다 빛깔이 너무 예쁘다를 연실 감탄하며 걸어가다 .
한쪽 성벽안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정겹고
빨아 줄에 걸어 놓은 빨래를 보면 우리네 사는 모습이랑 별반 다를게 없다.
유네스코는 1979년 이 구시가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성벽투어 중 더위에 지친 우리는 아이스크림집을 만났다
너무 반가워 시원한 크림을 하나씩 먹고 기력을 충전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드라아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그 사이사이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
부두 가득 정박해 있는 요트들 어느것 하나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것이 없다.
건너편에 보이는 로브리에나츠 요세를 바라보며 바위 위에 세워진 요새와 성벽들은
그 치열한 전쟁을 겪고도 남아 있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성벽위에서 바라 보이는 스지르산.
부자 카페의 모습.
플라차 거리의 1층 건물들은 상점이고 사이 사이에 골목길로 이어져 살림집들이 있다.
성벽에 올라 내려다 보이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수도원 문 윗쪽에 성 제롬과 세례자요한
가운데 피에타상이 조각되어 있다.
수도원 내부.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14세기에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 17세기
크로아티아를 휩쓴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입구의 위쪽에는 피에타상 조각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회랑이 있다.
회랑 왼쪽에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약국이 있는데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왼쪽에는 종교박물관이 있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현재 제약박물관으로
이용되고 한쪽에는 고대 서적의 필사본과
초판본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평화만이 느껴질 뿐 이 도시 어디에도 내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드리아의 진주'란 말이 헛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지상에서 낙원을 찾고 싶다면 드브로부니크로 가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이도시를 보려고 이제는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동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헝거리 부다페스트 (0) | 2019.08.07 |
---|---|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0) | 2019.08.05 |
크로아티아 / 달마티아의꽃이라 불리우는 스플리트로.. (0) | 2019.07.26 |
크로아티아 /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0) | 2019.07.21 |
크로아티아 / 폭포와 물로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동화 마을 라스토케 (0) | 2019.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