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7. 15:24ㆍ동유럽
정식 명칭은 헝가리공화국(Republic of Hungary)으로, 1989년 10월 23일 헌법 개정으로
헝가리인민공화국(Hungarian People’s Republic)에서 바뀐 명칭이다. 면적은 9만 3028㎢,
인구는 989만 7541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Budapest)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마쟈르족으로 96.6%이며, 독일인이 1.6%, 기타 슬로바키아인과 남슬라브인, 루마니아인이 있고,
언어는 민족고유의 마쟈르어를 사용한다. 국민의 67.5%가 가톨릭교를 믿으며, 개신교 20%, 그리스정교 2.6%이다.
기후는 다습한 대륙성기후로서 봄·가을이 짧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
경제는 농업 위주였으나, 제2차세계대전 후 공업화에 주력하여 공업생산이 주도하게 되었다.
특히 광업·알루미늄공업·자동차·전자기기 등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주요 자원은 석탄·천연가스·보오크사이트 등이다.
대략 북위 49∼45°(북쪽에서 남쪽까지 약 315km), 동경 16∼23°(동쪽에서 서쪽까지 525km)에 걸쳐 있으며,
북쪽으로 슬로바키아, 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남쪽으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서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접해 있다.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국회의사당으로 헝가리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상징 한다.
1884~1904년에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오직 헝가리의 건축기술, 인력, 자재만을 사용하여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 졌다.
건물벽에는 헝거리의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광장에는 4명의 존경받는 정치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어부요새에서 바라 본 국회의사당의 야경사진
유람선 사고로 우리는 유람선을 탈 수 없었다. 유람선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을 가져 왔다.
세체니 다리
부다와 페스트 지구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로 부다페스트가 탄생하는데 견인차 구실을 한 다리이다.
도나우강에 있는 다리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 발전에 기여한 이슈트반 세체니에 의해
1839년 부터 공사를 시작해 10여년 만에완공 됬다.다리
설계와 공사는 영국인 T.클라크와 애덤클라크가 담당 했다.
부다왕궁의 야경
부다왕궁.
다음날 아름다운 다뉴브강의 전망이 잘 보이는 곳을 다시 올라간 겔레르트 언덕.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물은 유람선의 참사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새삼스레 참사를 당한 분들의 명복을 빌어 본다. 여행도 시기와 자연환경이 맞아야 잘 볼 수 있다.
터키에서도 스위스에서도 이태리에서도 원하지는 안았지만 또 여기서도 야경 유람선을 탈 수가 없었다.
부다왕궁의 정문
부다 지역의 남쪽 언덕에 자리한 부다 왕궁은 재건과 파괴가 반복된 수난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3세기 후반 벨러 4세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고, 몽골 군의 습격을 받아 파괴된 것을
15세기 마차시 1세 때 재건하였다가 오스만투르크에 의해서 다시 파괴된다.
17~18세기에 재건 및 확장 공사를 하였으나 헝가리 독립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대대적인 개축을 시작하여 1904년에 완공한다.
왕궁 건설의 기쁨도 잠시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폭격으로 무너졌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왕궁보다는
박물관의 성격으로 다시 복원되었으나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여러 건물에서 발견되고 있다
마차시 성당
헝가리 국왕들이 대관식과 결혼식을 올리던 장소로 유명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에르제베트(엘리자베스 시시)
황후의대관식도 이곳에서 열렸다. 13세기 벨러 4세의 명으로 건축된 초기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어부의 요새, 세체니 다리와 함께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1470년 마차시 왕의 명령으로 증축된 88m 높이의 첨탑과 원색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이 볼 만하다.
교회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고, 역대 사제들이 입었던 의상, 교회 장식품, 십자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어부의 요새 헝가리 부다페스트. 마차시교회 동쪽에 있는 백색의 요새로 1902년에 건립되었고,
요새 앞에는 최초의 국왕 성이슈트반의 기마상이 서 있다. 왕궁 언덕의 동쪽에 우뚝 서 있는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된 건물로,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지어졌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중세에는 어부들이 도나우강에서 왕궁 지구에 있는 어시장으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동양적인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건국 당시의 7부족을 상징한다.
전체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얀 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교회까지 뻗어있는 계단이 아름답다.
왕궁을 돌아 나오니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지어진 작품으로,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랑이다.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7개의 고깔 모양을 한 탑이 있는데
이 탑은 헝가리 땅에 처음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마자르의 7개 부족을 상징한다.
19세기 왕궁을 지키는 시민군이었던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어하면서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1층은 무료지만 2층은 티켓을 끊고 입장해야 한다.
겔레르트언덕에서 내려다 본 야경.
겔레르트 언덕은 부다 왕궁과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가 있는 성채의 언덕과 나란히 자리한 언덕이며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자상의 전설
세체니 다리의 사자상을 조각했던 작가는 자신이 조각한 사자상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컸다고 한다. 완벽한 사자상에 흠이 있다면 자신은 바로 이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조각가는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부모에게 왜 사자의 혀가 없냐고 묻는 것을 듣고 그때서야 자신의 실수를 알고 도나우 강에 투신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사자의 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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