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6. 14:15ㆍ우리나라 이곳저곳
한복을 빌려 입은 젊은이들이 코로나19도 잠시 잊고 즐거워 하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좋는때라는 생각을 잠깐..
북적이던 거리는 한산했다. 코로나의 영향이 방방곡곡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한적한 길을 스적스적 거리면서 이 골목 저 골목 다녀본다.
그저 여유롭다. 누가 그랬다. 있는건 시간 뿐이라고.
전주 인재고택 학인당 현판
전주 인재고택 학인당은 20세기식 개량 한옥이 즐비한 한옥마을 내 민가 중 가장 역사가 깊은 한옥이자 유일한 문화재(전북 민속자료 8호)다. 1908년에 지어졌으니 올해로 112살이다. 집을 지은 이는 조선조 성리학자 조광조의 제자 백인걸의 11세손인 백낙중(1882∼1930) 선생이다. 궁중 건축 양식을 도입해 지어진 학인당은 구한말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함께 한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설 자리를 잃어가던 이 지역 명창들의 공연 무대로 활용됐고, 해방 이후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요인들이 묵어가는 영빈관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공산당 전라북도 도당위원장이 무단점거해 사택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백낙중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이 집은 2007년부터 고택 체험 공간으로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지금은 백낙중의 5대손인 백광제 씨 부부가 운영하며 방문객을 맞고 있다.
학인당 ; 76년 4월2일 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말기에 지은 한식주택으로 ,
전주시 완산구 교동의 한옥보전지역 안에 있다. 조선말 , 한국 전통기술을 전승 받아 지은 당시의 상류층 주택으로 ,
조선왕조 붕괴 후 궁중 건축양식을 민간 주택에도 도입한 전형적인 예이다.
이집을 지은 백낙중은 뛰어난 효자로, 고종으로부터 승훈랑 영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그가 죽은후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솟을 대문에 당시의 명필 김돈회가 쓴< 백낙중지려 >현판을 걸어 놓았다. 본채는 백낙중의 호 인재 가운데 인자를 따서 학인당으로 명명하였으며 ,
효산 이광렬의 호로 된 현판을 걸었다.
처음 지어졌을 때만 하여도 대지 면적이 2000평이 넘는 저택이었다. 현 본채의 서쪽에는 안채와 안사랑채 행랑채가
일곽을 이루었고 동쪽에는 창고로 사용되었던 고간들이 있었으며 본채 뒤쪽으로는
500여 평에 이르는 후원이 있었다고 한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우리는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드라마 " 미스터 션샤인 "의 찰영지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