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맞이하며

2024. 1. 4. 00:14기억하고 싶은 시

 

 

 



 새해 새아침에 +

                       박노해

새해에는 조금 더
침묵해야겠다

눈 내린 대지에 선
벌거벗은 나무들처럼

새해에는 조금 더
정직해야겠다

눈보라가 닦아놓은
시린 겨울 하늘처럼

그 많은 말들과 그 많은 기대로 
세상에 새기려 한 대문자들은
눈송이처럼 바닥에 떨어져 내려도

보라, 여기 흰 설원의 지평 위에
새 아침의 햇살이 밝아오지 않은가

눈물조차 얼어버린 
가난한 마음마다
새 아침의 태양 하나 품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세우려 한 
빛나는 대문자들은
내 안에 새겨온 빛의 글자로 
쓰여지는 것이니

새해 새아침에


희망의 무게만큼 곧은 발자국 새기며
다시, 흰 설원의 아침 햇살로

걸어가야겠다.

 

 

 

  

새해 아침 행복을 꿈꾸며... 이채

새해 아침 우리는

사랑 아닌 것

기쁨 아닌 것 어디에도 없어라

찬물로 세수하고

가지런히 앉은 아침이여!

솟아오르는 희망으로

천길바다 속 햇살을 길어 올리네

풀 먹인 마음으로

다름질한 생각으로

때때옷 입고 세배하는 아침이여!

말씀마다 뜻 있고

삶의 양식 되니라

한알의 씨앗으로

한해의 꿈을 심는 아침이여!

믿음의 뿌리마다

곧고 반듯한 기도가 되니라

새해 아침 우리는

소망 아닌것

행복 아닌것 어디에도 없을라

 

 

 

중년의 가슴에 1월이 오면 / 이채


시작이라는 말은
내일의 희망을 주고
처음이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두려움 없이
용기를 갖고 꿈을 키울 때
그대, 중년들이여!
꿈이 있는 당신은 늙지 않습니다

뜻이 있어도 펼치지 아니하면
문은 열리지 아니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아니하면
길은 가지 않습니다

책이 있어도 읽지 아니하면
무지를 면치 못하고
뜰이 있어도 가꾸지 아니하면
꽃은 피지 않겠지요

부지런한 사람에겐 하루해가 짧아도
게으른 사람에겐 긴 하루가 지루해
생각은 있어도 실천이 없다면
애당초 없는 생각과 무엇이 다를까요

다시 돌아가
처음으로 돌아가
그대, 중년들이여!
'이 나이에 뭘 하겠어' 라는
포기의 말은 하지 않기로 해요

 

 

 

 

 

1월

                                      이외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있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은 꽃이 되지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죽여 흐르는

불면의 강

기다리는 마음 간절할수록

시간은 날카로운 파편으로

추억을 살해한다.

모래바람 서걱거리는 황무지

얼마나 더 걸어야 내가 심은 감성의 낱말들

해맑은 풀꽃으로 피어날까

 

오랜 폭설 끝에

하늘은 이마를 드러내고

나무들

결빙된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 내며 일어선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눈부시다.

 

 

 

 

 

                    1월이 오면                               

                                       이해인

 

 

첫 눈 위에 

첫 그리움으로 

내가 써보는 네이름

 

맑고 순한 눈빛의 새 한마리

나뭇가지에 기침하며

나를 내려다 본다.

 

자꾸 쌓이는 눈 속에서

네 이름은 고이 묻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무수히 피어나는 눈꽃 속에

나 혼자 감당 못 할

한 방울의 피와 같은 아품도

눈 밭에 다 쏟아 놓고 가라

 

부디 고운 저 분홍 가슴의 새는 

자꾸 나를 재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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