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3. 23:56ㆍ다른나라 둘러보기
서안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회족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피크철이 아니라 그런지 여행을 온 사람들은 대부분 자국민들이었다.
4월이 되어 피크철이 되면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고루 뒤편 베이위안먼(北院门) 거리는 시안에 사는 후이족의 심장부다.
중국에 들어온 아랍인들이 중국인과 결혼을 통해 정착하면서 후이족이 되었다.
후이족이 처음 정착 생활을 한 지역이 산시 성(陕西省)으로, 아편 전쟁 때는
최고 170만 명에 달했다. 현재 산시 성에 거주하는 후이족은 5만여 명에 불과한데,
시안에서 후이족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지역이 바로 여기다.
베이위안먼 거리를 중심으로 서쪽 다마이스제(大麦市街)와
남쪽 시다제(西大街)까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간다.
다음 백과
상가 입구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회족거리에는 즐기려는 관광객들과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간단하게
간식을 즐길 수도 있으며, 상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회민거리 끝으로 나오면 종루와 고루가 있는 광장이 나오는데,
관광객과 시민들이 어울려 시안의 풍경을 즐기고 있다. .
회족거리를 어슬렁 거리며 구경하는 재미는 피곤했던 몸도 풀리는듯 했다.
당나라 때 옷을 대여해 주는 곳.
우리나라 경복궁에 가면 한복을 대여해서 입는것처럼 여기서는 당나라때 여인들의
머리모양, 화장 그대로 하고 다닌다. 처음엔 사진을 함께 찍어주는 모델인줄 알았다.
회죽거리 끝에는 종루가 있었다.
종루는 중국 산시성 시안에 있는 명나라시대의 종루다.
시안의 동서남북 4개 대로가 만나는 중심에 있다.. 오래 전 종루는 새벽을 깨우는
역할을 했었다.
종루에서 타종을 하면 밤새 닫혀 있던 성문이 일제히 열렸던 것이다.
1384년 종루가 처음 세워졌을 땐 지금 위치에서 서쪽으로 두 블록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1582년에 건물을 통째로 현재 위치로 이동해 왔다.
중국 전역에 있는 수많은 종루 중에서 역사와 예술적 가치가 으뜸으로 꼽힌다.
높이 36m의 3층 누각 꼭대기에 솟은, 상투처럼 생긴 나무 심지가
해질 녘이면 아름답게 빛난다고 한다.
구리를 덧씌우고 도금까지 해서 멀리서도 반짝반짝 빛난다. 어둠이 내리면 320개의
조명을 환하게 밝혀서 낮보다 자태가 훨씬 수려하다.지만 우리는 보지 못했다.
종루에 달려 있던 종인데 지금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종루와 고루 사이에 있는 광장에는 놀러나온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루
고루
종루에서 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고루는 종루보다 4년 앞선 1380년에 축조되어서,
‘밤을 알리는 시계’ 역할을 했다.고루에서 북을 치면 시안의 성문이 일제히 닫혔던 것이다.
전체 높이가 33m로 종루보다 약간 작지만
명나라 초기 목조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현재 모습은 1740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한 것이다.
종루와 마찬가지로 직접 고루에 올라갈 수 있으나, 경치가 종루만 못하니
굳이 돈들여 오를 필요는 없다.
고루보다 주목할 것은 고루의 북문(北门) 뒤로 이어진 베이위안먼(北院门) 거리이다.
시안을 대표하는 이슬람 구역으로, 7세기경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와 정착 생활을 해온
후이족(回族)들이 집단거주하면서 독특한 <회족거리> 문화 거리가 조성됐다.
다음백과
고루 중앙엔 큰 북을 달고, 사방으로 24절기를 표시하는 작은 북을 달려 있으며,
북을 치는 것으로 성문을 열고 닫았다고 한다
종루와 고루는 광장을 지나면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