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8. 17:58ㆍ역사 탐방
철불을 보려고 단호사에 갔더니 9월 14일 석종사로 옮겼다고 한다.
석종사로 가기전 단호사를 둘러 본다. 단호사는 충주시내에 있는 절이며 들어서면서
이 큰 불상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있다. 철불은 이곳에서 보지 못했지만
그래서 단호사도 보게 되었다.
충주시 단월동에 자리한 단호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고 조선 숙종 때 중건한 후
약사라고 개명하였으며 1954년 중수한 후 단호사라 개칭하였다.
대웅전의 단호사 철불좌상과 삼층석탑 등의 유물들을 통해 초창시기가 고려 시대로 추정할 수 있다.
단호사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로 기도 도량으로 원력을 다하고 있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참조 -
충주시 충원대로를 끼고 나지막한 담장을 두른 작고 아담한 사찰 단호사는 오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경내에는 고려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과 수령 500여 년의 노송 , 그리고 수백년이 이르는
느티나무가 위용을 품고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용틀임하듯 누워 있는 기품있는 노송과 만나게 된다.
단호사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노송은 나이 만큼이나 세월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자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소나무는 조선 초기에 심어진것으로 전해진다.
입구에 세워진 불상은 한참을 올려다 보아야할 만큼 웅장하고 크다.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은 충주시의 사찰 단호사 대웅전 앞뜰에 자리한 석탑이다. 단호사는
인근의 민가에 자리한 곳으로 산속이 아닌 평지에 자리한 사찰이다.
이곳에 있는 삼층 석탑은 현재의 자리가 원래의 터로 보인다. 1층 기단 위에 탑신부가 놓여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일부가 부서져 있다.
1층 몸돌은 제법 높으며 4층 몸돌 일부로 보이는 석재가 놓여 있어 5층 탑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각 지붕돌은 두껍고 투박한 모습으로 경사면이 급하게 처리되었고,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충주 지방의 탑들이 대부분 산 위에 놓여 있는데 이 탑은 평지에 놓여 있어 색다르다. 규모는 작으나
격식을 갖춘 안정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단호사에는 삼층석탑 외에도 불상 등 다양한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철불은 보이지 않고 금동불상만이 자리하고 있다. 단호사의 재정이 어려워 석종사로 매각하였다고 한다.
철불은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이다.
지방 호족층을 중심으로 불교 종파로는 선종의 확산과 함께 나타났다. 시기적으로는
통일 신라시기인 9세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크게 유행했다.
쉽게 산화되고 충격에 약하다는 단점으로 짧은 기긴 유행하다 사라졌다.
아마도 고려 정권이 안정됨에 따라 귀족 체계가 편입된 호족 세력의 위측에 따라
서서히 금동불상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2021년 9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철불은 총 18개로 국보가 3개, 보물이 15개이다.
지역별로는 충주에 3개로 가장 많다. 시대별로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몰려 있다.왜 충주라는 지역에
철불이 많이 남아 있는지는 충주 지방에 철 광산이 많이 있어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