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5. 18:11ㆍ역사 탐방
조선의 무관이자 외교관이다. 명, 청 교체시기에 명나라를 위해 여러 활약을 벌였으나,
조선의 정쟁에 휘말려 사망했다.
충주시 단월동 조선시대 존명반청의 상징적 인물인 충민공 임경업
1594∼1646 장군의 사당(祠堂) 충렬사(忠烈祠,
대한민국 사적 제189호 임충민공 유물전시관은 충렬사 외삼문 밖 동남쪽에 서향으로 앉아 있다.
유물전시관
추련도
임경업 장군이 평상시 보호용으로 지니고 있던 추련도는 충북유형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추련도의 총길이는 101.4cm이고, 폭 6cm, 칼날 길이 86.7cm이다.
추련도는 칼과 칼집이 모두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도신(刀身)은 쇠, 칼집과 손잡이는 목재, 목재를 고정시키는 장식은 황동(黃銅)과 구리로 되어 있다.
칼코는 방짜 철판 위에 주석과 납 합금으로 도금하였다.
숭정 6년 2월 2일에 임경업을 가선대부 영변대도호부사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숭정은 명(明) 의종의 연호이다.
숭정 6년은 1633년(인조 11)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이품의 문관과 무관에게 주던 품계이다.
종이품의 하계로서 가정대부와 가의대부보다 아래 자리이다. 영변대도호부사로 임명된 임경업은 평안북도 피현군의
백마산에 백마산성을 수축하고 국방을 강화했다.
임장군 편지
임장군 편지는 1642년(인조 20) 12월 4일 이대장 편에 받은 편지를 보고 답장으로 보낸 서간문이다.
임경업 장군의 유필 간찰로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부산진도
부산진도는 동래부 부산포 주변의 해안지대를 묘사한 지도이다.
정조는 1791년에도 충렬사 비문을 친히 지어 비석에 새겨 전하게 하였으며,
임충민공실기를 간행케 하여 임경업의 행적을 기렸다. 정조가 임경업에 대해
얼마나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무를 숭상했던 정조는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들을 기리고 예우했다. 정조는 특히 이순신과 임경업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만 사당엔 비가 오니 더 고요만 맴돌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조용히 얘기하는 소리도 왁자지껄한 소리가로 들리며
사당의 고요함을 깨고 있었다. 잘 몰랐던
임경업 장군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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