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8. 17:37ㆍ우리나라 이곳저곳
1896년 한반도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 중화동 교회이다.
중화동교회는 한국 기독교 역사 사적지 제15호로 지정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총회(총회장 오정호 목사) 소속 교회다.
예장통합 총회(총회장 김의식 목사) 소속의 서울 새문안교회(이상학 목사)에 이어
1896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장로교회다.
역사적 가치를 지녔음에도 교회는 수차례 개·보수된 탓에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다고 한다.
종을 보니 어릴적 교회에서 울리던 종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것 같다.
중화동교회 최초의 세례교인이자
23년간 담임목사로 사역하기도 한
허간 목사가 기록한 약사에 따르면
교회가 정식으로 설립된 것은 1896년의 일이라 합니다
경기도 옹진군 백령도에 기독교 역사관이 설립되었다. 백령도는 이 땅에 복음이 전래된 최초의 선택받은
땅 중에 한 곳으로 한국 기독교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최초는 1816년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해군 범선이 백령도에 와 섬 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고 갔다고 한다. 1832년 다시 와서 성경을 또 나누어 주고 ..
1898년에는 미국배인 제노럴 셔먼호가 백령도에 왔고 이 배를 타고 온 토마스 선교사는
백령도를 나와 평양에 갔다가 순교했다.
1898년 백령도 주민들이 교회를 세웠으니 그게 바로 중화동 교회이다.
세워진지 121이 되었다.
기념관에 들어가면 교회가 백령도에서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역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930년대, 1960년대 그리고 현재의 교회 모습까지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어
백령도의 기독교 역사를 깊이 있게 볼 수 있다.
중화동 교회 초대 당회장 원더우드 선교사
당시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 감독하던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는 중화동교회의 초대 당화장이었다.
그는 성경과 찬송가 번역, 대한성교서회,황성기독교청년회, 사업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평안도와 황해도의 교회들을 순화하는 도중에 1900년 9월26일 경 평양을 출발하여 진남포, 은률 ,
풍천을거쳐 소래에 도착했으며 , 6주정도 지나 1900년 11월8일 목요일 언더우드 목사 내외는
여전도사 김씨 부인의 안내를 받아 중화동 교회를 방문하여 언더우드 목사의 집전으로
7명에게 성례식을 베풀었다.
이날 세례자는 허득, 허근, 허권, 허륜,최영우 , 김흥보, 허간 등이었다.
토마스 목사
1840년 9월7일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으며 런던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 부임하였다. 1866년 한국선교를 희망하여 내한 1865년에 서북해안을 찾아와 백령도를 비롯 황해와 평안도를 순회하며 전도를 했다.
이듬해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가 1866.9.2. 평양 대동강 양각도에서 순교했다. 토마스는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와 순교당한 첫 번째 선교사였다. 그를 처형한 박춘권은 1899년 세례를 받아 영수가 되는 이적을 낳았다.
백령성당의 역사도 보고 싶었는데 여행사를 따라 갔으니 마음대로 개인 활동을 할 수 없어 아쉬움 만
남기며 마음을 접었다. 백령도를 다시 오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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