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0. 00:13ㆍ우리나라 이곳저곳
꼬불 꼬불 긴 산길을 숨가쁘게 올라온 버스는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주차장 주위를 둘러 보니 온통 나무들은 예쁜 옷으로 갈아 입고
관광 온 손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모처럼 같이 여행을 온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1시간 30분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안국사를 다녀오려면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 셋은 그럴 힘이 없어 올갈 수 있는데 까지만 갔다
오기로 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국사를 안 보면 어떤가 ?
이렇게 아름다운 산길을 걸어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적상호
적상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댐으로 막아 만들어진 인공호수로 해발고도 860m에 위치한다.
적상호를 건설한 이유는 아래 해발 270m에 있는 무조호와 양수발전을 위한 목적이며 589m의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기를 가동하고 전기를 생산한다.
멀리 양수수력발전소 전망대가 보인다.
상부댐(적상호)
인공 호수이고 아래 하부댐에서 물을 끌어올려
수력발전을 한다.
안국사로 올라가는 길
무주 적상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적상산에 있는 고려시대의 성곽이다.
1965년 7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제146호로 지정되었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대표적인 방어산성이다.
현재 성벽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최근에 성 안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안국사로 올라가다 보니 절은 아닌것 같고 궁금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고였다. 사고는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곳이다.
북방에 위치한 묘향산사고(妙香山史庫)가 후금의 위협뿐만 아니라 사고 관리의 소홀로
소장 도서가 망실(亡失)될 우려가 있었다.따라서 다른 적당한 장소에 실록을 이치(移置)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1610년(광해군 2) 순안어사(巡按御史) 최현(崔睍)과 무주현감 이유경(李有慶)의
요청에 따라 사관을 적상산에 보내 땅 모양을 살피게 하고 산성을 수리하게 하였다.
1614년 적상산성 안에 실록전(實錄殿)을 건립했으며, 4년 뒤인 1618년 9월부터 실록이 봉안되기 시작,
1633년(인조 11)까지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서 보관하였다
. / 다음백과
오른쪽은 실록각
실록각 내부
실록편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2년 간(1392~1863)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완질은 1,717권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다.
완성된 실록은 재난에 대비하고자 춘추관사고( 서울), 정족산사고( 강화), 태백산사고,
오대산사고(평창), 적상산사고(무주)의 전국 5대 사고에 보관하였다.
기 지정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던 적상산사고본은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유출되어 보존되고
있다고 전할 뿐 현품은 물론 실상 또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번에 확인된 적상산사고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1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의 3책 등 모두 4책이다.
이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05년에 공개 구입한 1책(『광해군일기』 권55∼58)은
「이왕가도서지장, 「무주적상산사고 소장 조선총독부기증본등의 소장인이 찍혀 있어 전라북도
무주의 적상산사고에 보관되었던 실록임을 알 수 있다.
왼쪽 선원각
선원각 내부
그 곳에서 해설을 해주시는 분이었다.
사고가 이곳으로 옮겨지는 과정과 사고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실록각이나 진원각의 내부는 적은 편이다.
우리는 전망대로 올라가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아름다운 산길을 볼 수는 없었다.
인텨넷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사고를 보고 설명을 듣느라고 안국사 가는 것은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내려 왔다.
기회는 나에게 주어졌을 때 망설이지 말고 해야한다는 생각인데 어쩔 수 없이 그냥 내려와야 한다.
왜냐하면 주어진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단체여행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