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돈덕전

2024. 12. 5. 15:15서울

 

 

덕수궁 돈덕전이 100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02년 열린 칭경예식에 맞춰 근대국가로서의 면모와 주권 수호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고자 1902년~1903년에 걸쳐 지은 서양식 영빈관이다. 1921년~1926년에 철거됐다.

문화재청은 2015년부터 덕수궁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역사문화자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덕수궁 복원 정비사업을 추진해왔다. 돈덕전은 2018년에 설계를 마친 뒤 201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12월 준공됐다. 새롭게 개관하는 돈덕전은 100년 전 대한제국 외교의 중심 공간이었던 역사성과 현대에 맞는 활용도를 대한제국 외교사 관련 전시와 도서 열람, 국내외 문화교류와 예술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돈덕전으로 가는 길. 

 

이 아름다운 단풍들도 머지 않아 낙엽으로 땅위를 뒹굴다

가을과 작별을 고하겠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

                                                                                

                                 레미 데 구르몽의 시가 순간 떠오른다.

 

                                  

 

 

덕수궁의 건물. 석조전의 뒤에 있다. 덕수궁은 근대에 지은 황궁이니만큼 서양식 건물, 양관이 여러 채 있었다

돈덕전도 그 중 하나이다. 러시아제국의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돈덕' 뜻은 ‘덕 있는 이를 도탑게 하여 어진 이를 믿는다”이다. 서경의〈순전에서 유래했다현판 글씨는

당나라 명필 구양순의 글자를 모아서 만들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예식을 위해 지었으며 화려한 유럽풍의 건물이다

 

 

돈덕전은 원래 고종의 궁궐로 건축되었으나, 고종이 1907년 퇴위하면서

순종이 이곳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덕수궁은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돈덕전은 그 시기를 반영하는

중요한 건축물이기도 하다.돈덕전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인 한국의 궁궐 건축양식과 서양식 건축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건물은 서양식 건축 양식을 도입한 대표적인 예로,

한국 전통 건축에 서양적 요소가 접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제에 의해 헐린 덕수궁 돈덕전이 100년 만에 복원돼 당당한 모습을 드러낸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덕수궁은 근대에 지어진 황궁으로, 여러 채의 서양식 건물이 특징이며, 돈덕전은 그중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꼽힌다.

돈덕전은 대한제국 순종 황제(재위 1907~1910)의 즉위식이 열린 장소로 대한제국 외교 공간으로 쓰였다.

지난 2018년 복원공사의 첫 삽을 뜬지 5년 만에 지난해 9월 개관한 돈덕전

 

 

 

돈덕전은 순종의 거처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와 황후가 살았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가 깊다.

돈덕전은 또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언한 곳으로, 한국의 근대화와 개혁의 중심지였음을 상징합니다.

덕수궁 자체가 한국 근대화를 상징하는 장소로, 돈덕전은 그 중심적인 건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1층은 고종의 칭경예식 등 대한제국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상설전시실 Ⅰ과 다양한 기획전시와 국제행사가 가능한 기획전시실로 구성됐다.

 

2층에는 한국 근대 외교의 흐름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 Ⅱ와 20세기 초 서양 살롱처럼 꾸며

각종 도서와 영상자료 열람, 학술회의, 소규모 공연 등이 가능한 아카이브실(대한제국 자료실)이 자리한다.

복도 바닥은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타일을 재현하여 장식했고 천장과 벽에는 100년 전 분위기의 조명등을 달았다.

층별로 대한제국 시기의 서울 풍경(1층)과 당시의 주요 인물들(2층)을 디지털 액자에 담아 전시했다.

 

1층으로 들어서면 긴 복도 유리 바닥 밑에는  헐릴때 나왔던 벽돌이 전시되어 있다.

 

전차의 모습이라는데 문도 없고  레일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옛날 서울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다.

 

 

빨래터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우리 생활과 비교해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전시되어 있는 발굴 당시의 타일인데도 무늬가 아름답다.

 

 

 전시관은 준비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서..

 

 

 

독립신문은 고종 독립 협회의 주도 아래 설립되었습니다. 1896년 2월, 독립협회는 한국의 국권 독립 근대화를 목표로 결성된 시민운동 단체로,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적인 국가를 이루기 위한 개혁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때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언론이었으며, 독립신문은 바로 그 언론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독립신문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내는 신문으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신문 중 하나입니다. 1896년 4월 7일에 발행을 시작한 독립신문은 일제강점기 이전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국권 회복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신문은 그 당시 사회와 정치에서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으며, 독립운동 근대화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독립신문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적 개혁 민족 독립운동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던 중요한 사건입니다. 을사늑약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한국의 독립을 위협하는

전환점이었으며, 한국 근대사에서 국권 침탈의 상징적인 사건.

 

헤이그 특사 파견은 1907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침략적 행위에 대해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은 을사늑약 일제의 강압적 지배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을 높이려는 

대한제국의 외교적 노력이었지만, 일본의 압박과 내부적인 정치적 어려움으로

인해 결국 국제적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습니다.

2층 복도 벽에 붙어 있는 중요한 인물

 

 

 

책을 볼 수 있는 도서실 , 휴계실도 있다.

 

우리나라 근대사를 돌아보며 공부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돈덕전을 나서서 석조전 뒤 산책길에서 대한문으로 나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

 

 

산책길을 돌아 대한문으로 나가는 길에 있는 연못은 가을의 극치감을 느끼게하는 풍경이었다.

정말 아름답다 !

 

 

꽃보다 아름다운 가을 단풍. 이 또한 낙엽이 되어

쌓이면 앙상한 나목으로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걸 

알려주겠지.

 

눈이 내려 겨울이지만 아직 나는 가을의 언제리에서 맴돌고 있다.

티스토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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