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혜석
2011. 2. 5. 23:58ㆍ그림
서양화가.
신문학을 존중하는 개화된 가정에서 기정의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도쿄에 유학중이던 오빠 경석의 권유로 1913년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유화를 전공했다. 유학시절에는 최승구·이광수와 사귀면서 동경 유학생 동인지였던 〈학지광〉에 여권신장을 옹호하는 〈이상적 부인〉 등의 글을 발표했다. 1918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함흥 영생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지내다가 3·1운동에 참가 후 체포되어 수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20년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했고, 남편의 도움으로 1921년 서울 경성일보사 내청각(來靑閣)에서 첫 전람회를 열었다. 서울에서 열린 최초의 서양화전시회로, 〈매일신보〉의 기사에 의하면 "낙역부절하여 인산인해"(絡繹不絶人山人海)였다고 한다. 1923년 일본 외무성 관리가 된 남편을 따라 만주에 거주했다. 1927년 모스크바를 거쳐 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을 여행하면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견학하고 파리에서는 야수파 계열의 그림을 그렸다. 제1~11회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9번 출품하여 제3회 때 〈가을의 정원〉으로 4등상, 제4회 때 〈낭랑묘 娘娘廟〉로 3등상, 제5회 때 〈천후궁 天後宮〉으로 특선을 받았다. 유럽 여행중 사귄 최린과의 만남이 문제가 되어 귀국한 뒤인 1931년 이혼했다. 그뒤 사회의 인습적인 도덕관에 저항하는 〈우애결혼, 실험결혼〉·〈이혼고백서〉 등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는 글을 발표했으나 사회의 냉대로 점점 소외되었다. 1935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뒤 수덕사·해인사 등을 전전하며 유랑생활에 들어가 정확한 행적을 알 수 없다. 1946년 서울 자혜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쓸쓸히 인생을 마감했다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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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산 만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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