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6. 20:19ㆍ우리나라 이곳저곳
친구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연락을 해 왔다.
인천 차이아 타운으로 ..
고등학교 짝궁이던 친구이다.
오랫만에 만나도 그냥 어제 만났던것 같이 허물이 없는 친구이다.
꿈꾸는 지란지교처럼..
두 집 부부는 그렇게 만나면 즐겁다. 그래도 가까이 있어도 자주는 보지 못한다.
누가 차를 가져 갈까? 아무래도 두 남자분이 점심을 먹으며 술 한잔을 하면 운전은 내 몫이니
우리차로 가야할것 같았는데 전철을 타고 가자고 해서 그러기로 합의를 봤다.
인천역에서 내리니 바로 길 건너가 차이나 타운이었다. 차로 올때는 몰랐는데..
차이나타운 그곳도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다
- 차이나 타운 입구 -
"공화춘" 100년이 되었다는 공화춘의 식당은 자장면 박물관으로 이용될것이고 이곳은 새로 지어진 식당이다.
이곳도 오는 날마다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뒷 모습이 신통하게 닮은 모습이다. 나이를 먹으면 뒷짐이 편한가 보다.
- 중국인들의 소원마당에 매달은 사연은 무엇일까. 자기의 본국으로 가고 싶은 건 아닐까? -
- 삼국지 벽화가 시작 되는 길 - 80여장의 벽화가 그 소설의 줄거리를 보여 준다.
- 좌판에 펼쳐 놓은 골동품들 -
공자의 모습
공자는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鄒邑:지금의 山東省 曲阜의 남동)에서 BC 551년에 출생하였다.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이다. 공자의 ‘자(子)’는 존칭이다. 춘추 말기 사람으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쇠퇴하여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자, 주왕조 초의 제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상은 인(仁)이며,‘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곧 인(仁)이다)'를 그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인(仁)을 단지 도덕규범이 아닌 사회질서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사상으로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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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라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두 나왔는지 음식점마다 긴줄이 ..
주민 자치센터도 중국식 건물로 지었음
화덕에다 붙여 굽는 만두라는데 이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건 싫다.
차이나 타운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나서 자유공원으로 올라 갔다.
정치적인 이념으로 백아더 장군 동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그자리에 서있다.
그래도 자유공원 하면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먼저 떠오르곤 했었다.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 공원 위에서 내려다 본 인천 앞바다의 풍경 -
꽃이 활짝 피어 공원으로 나온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