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축 / 에페소

2014. 3. 19. 21:55터키

 

기원전 6세기경 에페소는 리디아왕국의 군주 크로이소스(Croesus)의 지배를 잠시 받긴 하였으나 곧 페르시아에 정복되었고 다시 알렉산더 대왕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나가던 알렉산더 대왕은 크로이소스에 의해 재건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 곳을 정복, 에페소는 평온을 되찾고 융성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리시마쿠스(Lysimachos)는 피온산(Mt.Pion)과 코레쏘스산(Mt.Koressos) 중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이 곳을 높이 10미터, 총 길이 9Km의 성벽으로 요새화시켰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원형극장, 경기장과 체육관 등의 유적은 이 당시 지어진 것이다.

기원전 88년, 에페소인들은 폰터스(Pontus)와 연합하여 로마인들에게 대항하였으나 로마의 세력 팽창이 엄청날 것을 알아차린 에페소인들은 곧 로마편으로 돌아섰다. 이로써 에페소는 로마의 동맹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제국 아시아속주의 수도로 부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곳은 거대 항구가 있는 아시아 무역항로의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번영도 서기 17년에 일어났던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폐허로 변하였다.

 에페소는 에게해안도시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약 74km떨어진곳에 자리하고 있다.

에페소를 가기위해서 쎌축이라는 곳을 지나야 한다.

셀축과 에페소의 거리는 3km거리 셀축에는 에페소 박물관 , 사도요한 교회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아르데미스 신전의 큰 기둥이 있다.

에페소 박물관에는 에페소 사람들의 수호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있다.

또한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건축한 요한 교회에 사도 요한 무덤이 무덤이 안치되어 있는데 ,

사도 요한과 바울은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이 교회를 거점으로 초기 일곱 교회를 개척하고  요한복음을 기록하였다.

 초기 에페소는 기원전 10세기에 이오니아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알렉산더대왕이후 로마의 중심도시가 되면서번창기를 맞아 에게해안에서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화려하고 부유한 대도시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살기 좋은 에페소는 철학 문학 역사 등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예술가와 돈 많은 상인들이 몰려와한 때는 인구가  25만 명을 가진 큰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집트여왕 크레오파트라와 결혼한 로마의 집정관 안토니우스도 에페소에 들러 보석과 화장품울 샀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남문 매표소를 통해 입장하여 시청터,오데온 ( 반 원형극장 ), 헤라클레스문 . 상류들이 살았던

크레토스 거리를 걸어 공중목욕탕, 시리아 풍으로 지어진 신들의 부조 하드리아누스 신전을 지나면서

거리의 끝에서 만나는  2층 건물의 앞부분만 남나 있는 쉘수스 도서관.

코린토식건물의 기둥들이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도서관 옆으로 마제우스와 미트리디테의문이

있는데 아우구스 황제가 노예에서 풀어주어 감사에 답례로 돈을 많이 벌어 황제와 그의 사위

아그리파를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그곳을 지나면서 원형대극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 했다. 원형극장을 둘러보고  북문 쪽으로 나왔다.

 

에페소 건축양식은 이오니아식 , 코린토식, 도리아식 모두가 어우러져 있다.

 

 

 고양이가 얌전이 앉아 우리를 먼저 맞이한다.     

터키는 개와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지 않는다고 하니 여디서나 흔하게 돌아 다닌다.

 

 

오데온 야외 음악당인데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원형의 음향장치가 잘되어 끝까지 잘 들린다고 한다. 관료,행정관, 

상원의원들의 회합이나 콘서트. 강연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크레테스거리 , 도서관으로 내려가며 왼쪽길에 마블로 모자이크 모양을 내어 화려하기 그지 없다.

명품거리로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다녔다고 하는데 

그 옛날 에페소가 얼마나 화려하고 번영했던 도시임을 말해준다.

 

그 시대에 집이나 상가였을것이라고 하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목요탕 건물로 온탕, 냉탕 ,열탕 시설이 되어 있고

목욕탕 물은 아래 화장실로 내려와 수세식이었다고..

 

변기가 대리석이라 차가우면 하인들이 먼저 앉아 데웠다고 하니 ..  설명을 위해 모셔온 사진.

 

                           

 

승리의 여신 니케 ,왼손에는 월계관을. 오른손엔 종려나무가 유일하게 날개가 달린 신이었다고 

헤라클레스문 위 아치형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

 

 

 

                    

                                쉘수스 도서관으로 내려가는 길 옆에 세워져 있던 조각상.

 

                    

                           

                     

 

               트리안의 샘 ,   분수였다고.


                 

 

        하드리아누스신전은 보수중이었다. 조각과 부조가 넘 아름답다고 하는데..

 

신전의 모습은 이렇다고 한다. 

신전 뒤의 아치에 메두사의 조각.  모셔온 사진

 

 

 

헤라클레스 문

 

 

 

 

 

 

그 옛날의 토기로 만든 상수도 관이었다고.

 

 

 

                 

              

                            헤르메스신 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의 하나로 주신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축의 증식을 관장하는 부와 행운의 신 , 길손의 신, 죽은자를 지하 세계로 인도하는 신이었다.

 

 

 

   메비우스 기념비

대리석 길 끝에 셀수스 도서관이 보인다. 대리석으로 깔린 이 길에는 마차도 다녔다함.

 

에페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꼽으라면 셀수스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서기 110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35년에 완공한 것인데 로다 제국 시대에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셀수스 포레마이아누스(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도서관으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넓이 21m의 공간에 12.000여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

이 곳에는 지혜(Sophia), 사색(Thought), 학문(Episteme), 미덕(Arete)을 상징하는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로마제곡 내의 최대 도서관중 하나이란다. 

12,000권 이상의 책을 소장하고 있던  이 도서관은 학문의 중심지 역활을 할 수 있었다.

도서관 옆으로는 유곽으로 가는 지하문이 있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쉘수스 도서관의 아름다운 조각들

쉘수스 도서관 앞에 있는 지혜, 운명, 학문 , 미덕을 상징하는 여신들이다.

 

            

유곽이 있음을 알리는 광고석판.  하트모양 < 사랑을 하기 위한 >, 위쪽 오른편 여자 , 아래는 화폐 .

    발모양에 발을 대봐서 발이 작으면 못들어 갔단다. 

                                                                                                                                                             

                     

  

 

 

 

               

 

 

 

   

 

 

 

원형대극장;  산의 경사를 이용해 지어진 원형극장은 헬레니즘 시대 건축했으며

중앙무대의 공명판을 통해 나간 소리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위쪽 관람석까지

전달하는 구조로 25,000명정도 입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멀리보이는 길이 아르카디아거리.

 

              

                             무대 쪽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연결되는 문

 

         

원형극장에서 아랫쪽 해안으로 가는 아르카디아 거리. 옛날에는 번성했던 항구가

있었으며 1km 가까이에 지중해의 해안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진과 바다에서 실려온 모래의 퇴적으로 인하여 4km로 멀어졌다고 한다.

양쪽으로 상가가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돌이 많은 나라라서 관도 돌로 만들었다. 석관에 새긴 조각들도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누워 있으면 죽어서도 행복할까?

 

교회 역사에서 에페소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제자 사도 요한과 관련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바울로 인해 복음이 왕성히 전해지고 있다는 에페소로 오게 되었다. 에페소에 도착한 요한과 마리아를 위하여 에페소 성도들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바오로 2세가 성모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여 신성하고 중요한 곳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곳은 카톨릭교회의 성지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가보지 못하였다.

 

에페소는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바울로가 전도와 사목을 한 교회중 하나가 에페소 교회였다.

 

에페소에 잔재해 있는 모든 유적들을 다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음이 안타까웠다.

복구사엽이 다 끝나면 그 옛날 에페소의 아름다운 거리를 우리가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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