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유적지

2025. 11. 24. 18:54역사 탐방

 
 
 
 왕궁리유적은 백제 30대 무왕(600 ~ 641)대에 조성되어 그 후 사찰로 변화했다.
백제 말기 익산 경영과정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왕궁으로 사비(부여)와


함께 복도로 이해하고 있다. 백제 왕궁은 용화산에서 발원한 능선 끝자락의 낮은
구릉 위에 조성되었다. 1989년부터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에 의하면
백제 말기 왕궁으로 조성되어 일정기간 시용된 후 왕궁의 중요 건물을 철거하고 탑과 금당,
강당 등 사찰이 들어선 복합유적이다   왕궁리유적의 왕궁은 백제왕궁으로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담장과 내부구조가 확인되어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조성된 백제왕궁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다.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위치한 유적 미륵사 와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곳은 예로부터 왕궁평, 왕검이, 왕금성 등으로 불렸으며,
정확히 어떤 곳이었는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에 궁궐로 사용되었으나,
후대에 사찰로 용도가 바뀌었고, 이후 사찰도 폐사되고 폐허로 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국보 제289호[4]인 왕궁리 5층 석탑만이 남아있으며,
해당 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국보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바로 옆에 이곳 유물을 전시하고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는 백제왕궁박물관이 있다.

 

 

 

 

 

 

 

 

 

 

 

                                오층석탑 국보 289호.

 

터만 남아있는 왕궁터에 우뚝 서 있는 오층 석탑의 모습은 그 옛날 백제의 

문화와 예술을 대변하듯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시대를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금당터

 

금당은 부처를 모시는 사찰의 중심 건물이다. 왕궁리 유적의 사찰은  백제시대 말기에서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궁궐터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남북 입지 선정에 오층석탑 ,

금당터, 강당터가 있어 " 1탑 1금당 "이라는 사찰 배치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당 크기는 정면 5칸 측면 4찬이며 건물안이 막히지 않고 하나로 통하는 통간 구조이다. 

그 밖의 사찰 유적으로는 5층석탑 동쪽의 기와 가마터와 강당 터 서똑의 건물터 2곳이 있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단순한 옛터가 아니다. 이곳은 백제의 정치와 문화, 종교가 함께 꽃피었던

중심지로 , 오랜 세월을 넘어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전하는 살아있는 역사다. 

오층석탑은 백제의 뛰어난 건축 기술과 불교문화위 정수를 보여주며 ,

유적지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은 당시 왕궁의 웅장함을 상상하게 한다.

넓은 터를 바라보며 그 옛날 서 있던 건물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감회에 젖어 본다.

 대형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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