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

2025. 10. 25. 13:21역사 탐방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화창한  어느날, 남편 친구가 점심을 먹자고 초대했다.

은평구에 사는데 서오능쪽에 좋은 식당들이 많다고 ..

점심을 배불리 먹었으니 서오릉 한바퀴 돌면 소화가 될 것이라고 

그래서 간 서오릉이다.  아주 오래전에 갔었어도 다 잊어 버렸으니

처음간 것 같은 느낌이다. 사부작사부작 걸어 서오릉에 도착했다.

 

 

사적 제198호. 5릉은 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을 일컫는다.

1457년(세조 3) 세자 장(璋:뒤에 덕종으로 추존됨)이 죽자 이곳에 안장(경릉)한 이래

1470년(성종 1) 덕종의 아우인 예종과 그 계비인 안순왕후 한씨의 창릉,

1681년(숙종 7)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익릉, 1721년(경종 1) 숙종과

그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와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의 명릉, 1757년(영조 33)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홍릉이 들어서 능의 무리를 이루었다.

그밖에 이곳에는 명종의 큰아들인 순회세자의 순창원이 경내에 있으며,

1970년에 숙종의 후궁인 희빈장씨의 대빈묘가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올려다 본 하늘엔 흩뿌려진 솜털 같은 구름이 가을임을 말해준다. 

이번 가을엔 비가 너~무 자주와서 이런 맑은 날을 보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보너스를 받은 날처럼 기쁘다.  정말 좋다.

 

 

 

 

 

 

 

 

 

 

 

 

역사문학관을 지나 숲길을 걸어 가노라니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에

절로 감사한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 본다.  이제  명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조선 왕실의 왕릉군(群). 이름의 뜻은 서쪽에 있는 5개의 능(陵)이라는 뜻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른 조선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왕실의 족분(族墳)을 이룬 곳으로 5릉은 경릉(敬陵), 창릉(昌陵), 익릉(翼陵),

홍릉(弘陵), 명릉(明陵) 등을 말하며, 그 외에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묘소(위 지도에서 6번)도 이곳에 있다.
꽤나 유명한 인물들의 능묘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순창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능묘의 주인공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조연급으로 나왔던 인물들이다. 경릉은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와 그의 부인인 인수대비의 능이고,

창릉은 세조의 차남이자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과 그의 부인 안순왕후의 능이다.

그리고 숙종과 관련한 인물들도 있는데, 당장 본인 숙종과 그의   모두 이곳에 능이 있으며

역시 왕후에까지 올랐던 장희빈도 이쪽으로 묘가 옮겨 왔다. 또한 사도세자와 관련한 인물들의 능묘도 있는데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묘와 사도세자를 보호해주던 정성왕후의 능이 있다.

그야말로 조선 왕조의 드라마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묻혀 있기에 다른 왕릉들에 비해

인기가 꽤 있는 편에 속한다./ 나무위키

 

 

명릉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가 안장되어 있는 능이다.

동원이강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으로, 인원왕후는 그 옆에 단릉으로 묻혀있다.

인현왕후는 숙종보다 한참 먼저 세상을 떠났고, 후에 숙종도 60세를 일기로 승하하면서

그녀 옆에 묻히길 원했다고 전해진다. 숙종이 죽기 전까지 현재 왕비였고 가장 오랜 기간

숙종의 정비였던 인원왕후끝내 죽어서도 홀로 남편을 바라보는 형태로 묻히고 말았다. 

                    나무위키

 

 

숙종(재세 : 1661년 음력 8월 15일 ~ 1720년 음력 6월 8일, 재위 : 1674년 음력 8월 23일 ~ 1720년 음력 6월 8일)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아들로 1661년(현종 2) 경덕궁(현 경희궁) 회상전에서 태어났다. 1667년(현종 8)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674년 현종이 세상을 떠나자 14살의 나이로 창덕궁 인정문에서 왕위에 올랐다. 14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총명하고 영특하여 수렴청정을 받지 않았다.

 

재위기간 동안 붕당간 정치 대립이 심한 가운데 세 번의 환국(1680년 경신환국: 유악(油幄) 사건으로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 교체, 1689년 기사환국: 원자 칭호 문제로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권 교체, 1694년 갑술환국: 인현왕후 복위 문제로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 교체)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고, 전국적인 대동법(大同法)과 양전(量田)을 실시하였다. 또 상평통보를 유통시켜 상업을 장려하였고, 1712년(숙종 38)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청나라와의 국경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왕실 족보인 『선원록』 편찬을 시작으로 2대 정종의 묘호(廟號, 종묘에 붙여지는 이름) 추숭과 6대 단종과 정순왕후의 복위, 소현세자빈 강씨를 복위하는 등 왕실의 질서와 제도를 확립하였다. 이후 1720년(숙종 45) 경덕궁(현 경희궁) 융복전에서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자각

조선 왕릉의 정자각은 능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로 그 모양이 ‘丁’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불렀다. 정자각은 봉분 아래에 있으며, 정자각 앞으로는 박석을 깐 향로(香路)와 어로(御路)가 있고, 향어로 맨 앞에는 홍살문이 놓인다. 정자각 좌우로는 수라간과 수복방이 대칭으로 놓여 정자각 제례에 필요한 간단한 준비를 할 수 있다. 물론 본격적인 준비는 홍살문 밖에 있는 재실에서 이루어진다. 조선왕릉 정자각의 연원은 고려시대에서 찾을 수 있으나 그 이전의 정자각 형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다음 백과

 

비각  / 비석이나 릉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세워두는 곳.

 

 

 

인현왕후(仁顯王后) 

 

인현왕후 민씨(재세 : 1667년 음력 4월 23일 ~ 1701년 음력 8월 14일)는 본관이 여흥인

여양부원군 민유중과 은성부부인 송씨의 딸로 1667년(현종 8) 반송동 사저에서 태어났다.

1680년(숙종 6) 숙종의 첫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681년(숙종 7)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 숙종의 후궁 장씨가 왕자(경종)를 낳자 원자(元子)로 정하는 문제로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기사환국이 일어나면서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었다.

1694년(숙종 20) 인현왕후의 복위운동으로 갑술환국이 일어나면서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다.

1701년(숙종 27) 창경궁 경춘전에서 35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후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한 죄로 옥사(신사옥사, 무고의 옥)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인원왕후

인원왕후 김씨(재세 : 1687년 음력 9월 29일 ~ 1757년 음력 3월 26일)는

본관이 경주인 경은부원군 김주신과

가림부부인 조씨의 딸로 1687년(숙종 13) 순화방 사저 양정재에서 태어났다.

1701년(숙종 27) 숙종의 두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702년(숙종 28) 왕비로 책봉되었다.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되었으며, 경종 연간에 있었던 노론과 소론의 대립인

신축·임인옥사(신임옥사)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은 영조를 끝까지 보호해 주었다.

1724년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왕대비가 되었으며,

1757년(영조 33) 창덕궁 영모당에서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재실 앞에는 수백년은 됨직한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경릉

경릉은 추존 왕 덕종(1438~1457)과 소혜왕후 한 씨(1437~1504)의 묘로 덕종은 세조의 장남이다.

1455년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20세에 사망해 대군 묘 제도에 따라 장례를 치렀지만,

1471년 둘째 아들인 성종에 의해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는 정난공신 1등에 오른 한확의 딸로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1455년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아들 성종이 즉위하자 왕대비(인수대비)가 되었다. 세조 3년(1457) 본래 병약했던 남편이 사망하고

세조의 법통은 시동생인 예종이 물려받는다.

예종 또한 즉위 1년 2개월 만에 죽자 아들 성종이 즉위하면서 실권을 장악했다.  / 다음백과

 

덕종 경릉

소혜왕후의 릉

 

경릉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왕릉은 왕의 것이 오른쪽에,

왕비의 것이 왼쪽에 조성되지만

이것은 반대로 왕릉이 왼쪽에, 왕비릉이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형식이다.

추존왕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왕릉에 나타나고 있는 난간석이나 망주석, 석수 등의 호위가 없다.

반면 왕비릉은 생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므로 능제도에 따라 구색을 갖추었으며,

난간석의 기둥은 창릉의 형식을 따랐으므로 특이하다.

 

 

                                                 비각

                          정자각

      

 

 

 

장희빈 묘.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의 후궁이자 제20대 국왕 경종의 생모인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묘이다.
원래는 경기도 광주군에 있었던 묘소였으나 19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장되었다.
정비가 아니지만 국왕이 되는 원자를 생산한 후궁은 통상적으로 묘소의 칭호가 '원(園)'이 되어야 하나,
죄를 지어 사약을 마시고 죽은 죄인인 희빈 장씨는 본래의 대우를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묘로 남게 되었다.
 
사실 희빈 장씨 사후 1753년(영조 29년)에 왕의 생모인 후궁의 무덤을 원으로 삼는 제도가 정해졌으나
장씨는 죄인인 데다 해당 제도를 만든 영조부터가 희빈 장씨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희빈 장씨의 무덤은 “원(園)”으로 승격되지 못했다. . /  나무위키

위치는 경릉 옆쪽 언덕길 올라가는 곳에 초라한 모습의 묘이며
희빈 장씨의 생애가 워낙 파란만장했던 탓인지 온갖 귀신 괴담이 돌아다녔다고한다.

 

 

                            

    순창원

 

조선 제13대 국왕 명종의 장남인 순회세자와 그의 부인 공회빈 윤씨가 안장된 원(園).

서오릉 내에 있는 능묘들 중 수경원과 함께 둘 뿐인 '원(園)'이다.
현재 두 사람 중 시신이 온전히 안장된 인물은 순회세자 한 명 뿐이다.

공회빈 윤씨는 시신 대신 의복을 관에 넣고 합장하였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공회빈 윤씨는 1592년 4월 14일 사망하였는데, 한 달 뒤인 5월 13일에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말았다.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왜군을 피해 선조와 신하들은

한양을 버리고 급히 피난을 떠났는데, 경황이 없던 나머지 공회빈 윤씨의 시신을 깜빡하고 챙기지 못한 것.

뒤늦게 벽제에 다다라서야 선조가 그녀의 시신을 후원에 가매장하라는 명령을 보내긴 했지만,

1년 뒤인 1593년 한양으로 돌아와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결국 1603년 선조는 그녀의 시신 수습을 포기하고 신주만 봉안해 종묘에 모셨으며,

동시에 그녀를 유의장으로 장사지내며 순회세자와 합장했다.
조성 당시에는 순회묘(順懷墓)라 불리었으나 1870년(고종 7년)에

순창원으로 승격되며 격에 맞는 석물들이 조성되었다.

 

소혜왕후의 릉 < 왼쪽에 모셔져있음 >

 

 

                                                 인터넷에서 가져 온 사진.

 

 

 

1557년(명종 12)에 조선의 제 13대 국왕 명종과 인순왕후의 외아들이자 선조의 사촌형이다.

건국 < 1392년 > 이래 160년 동안 이어져온 태조 이성계의 마지막 적통이다.

세자로 책봉되고, 윤원형(尹元衡)의 배려로 전 참봉 황대임(黃大任)의 딸로 세자빈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황씨가 병약하여 1년이 넘게 가례를 미루자 1559년 호군(護軍) 윤옥(尹玉)의

딸로 세자빈이 교체되어 가례를 올렸다. 가례를 올린 뒤 얼마 되지 않아 후사도 잇지 못한 채

1563년 열세살의 어린 나이로 죽었다. 시호는 순회(順懷)이며,

1603년(선조 36)에야 비로소 신주(神主)가 만들어졌다.

 

 

 


숲길은 속세를 떠나 먼 옛날 그시절로 돌아가는 듯 현실과 동떨어져 나온

과거의 어느지점에 다달은 듯하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능역 곳곳에 고요함이 감돌고, 계절마다 색이 바뀌는

모습 또한 자연의 경의로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지금은 파란 단풍나무의 

색깔이 이제 곧 붉은 색으로 물들면 또 다른 모습으로 서오릉을 찾는이에게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이번에는 서오릉의 아랫쪽 릉만 돌아보고 가기로 한다. 

 

일행이 있어 고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게 편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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