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2. 20:41ㆍ역사 탐방
역사관을 나와 이순신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세병관으로 간다.
삼도수군통제영 입구에 세워진 망일루에 올라 통영 바다를 내려다본다.
먼 옛날 이곳에서 바다의 동태를 살폈을 삼도수군통제사 여러 수군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통영이란 이름은 바다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통제영에서 유래한다.
통영의 이름을 찾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역사여행을 떠났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
왜군의 해상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수군을 통솔할 지휘관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조정에서는 경상·전라·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지휘 통솔한 삼남지방의 수군 총사령관인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제를 만들고,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을 초대 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수군통제사가 지휘하는 곳을 ‘통제영’ 또는 ‘통영’이라 불렀는데,
처음 통제영이 자리 잡은 곳은 한산도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4년에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부임한 뒤 삼도수군통제영은 두룡포(지금의 문화동)로 자리를 옮겼다.

삼도수군통제영은 1895년 폐영될 때까지 300년 가까이 삼도 수군의 지휘본부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 오랜 노력으로 옛 영광을 복원하다 바다를 지켜낸 삼도수군통제영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민족정기 말살 정책에 의해 세병관을 제외한 관아건물 100여 동이
훼손되거나 파손됐다. 역사의 흔적이 사라진 자리에는 통영초등학교와 통영세무서 등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다. 하지만 나라를 지켜내고자 했던 통제영의 역사를 이대로 묻어둘 순 없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삼도수군통제영을 복원하기로 하고 세병관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 지표 및 유구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17개 관아와 12공방 건물터,
주전소지 등이 발굴되면서 1998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02호)인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지정받았다. 이후 200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의 삼도수군통제영의 모습을 갖추는 데 꼬박 13년의 세월이 걸렸다.

외심문 망일루


내삼문인 지과문을 들어서면 세병관의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통영세병관은 200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본래 1603년 조선 (선조 36)에 이순신(李舜臣)의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으며,
정면 9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건물로
후일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의 객사 건물로서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건물이었으며
여수에 있는 진남관과 더불어 몇 안되게 남해지방에 남아 있는 조선의 관아 건물이기도 하다.
통영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건물이었으니만큼 삼도수군통제영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삼도수군통제영이 건설된 당시의 건물로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다.
또한 통영 세병관은 현존하는 현대 이전의 한반도 목조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큰 편에 속하고
잘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다. 통영 세병관은 여수 진남관보다는 규모가 약간 작긴하지만
진남관과 비슷한 점이 많다. 통영 세병관은 1963년에 세병관이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293호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국보 제305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세병관의 의미는 두보의 시 구절 중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으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누리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현판은 제 137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썼다고 한다.

세병관은 1963년 10월 24일 해체수리시 종도리의 홈 속에서 발견된 세병관중수상량문에
을사년(서기 1605년) 1월에 짓기 시작하여 그해 가을 7월14일에 상량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던 자리여서인지
일반인이 올라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 < 국보 224호 >
여수 진남관 < 국보 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그 역사성과 학술적 , 예술적 가치가 크다.







백화당
선조 36년 < 1603> 제 6대 이경준 통제사가 건립하였다.중국 사신 등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 <裨將>청인데 , 비장은
지방은 지방장관 및 중국사신을 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과 같은 업무도
맡았으며 지방장관이 임의로 임명하였다.
,


석수조 / 물을 저장하여 자개등을 갈고 닦는 등의 작업을 하던 곳.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된 통제영 12공방 삼도수군통제영에 가면 통제영 12공방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때도 군인들은 훈련을 하고 밥을 먹어야 했는데,
군인들이 쓸 물자를 만들고 때로는 군량미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물품을 만들던 곳이 12공방이었다.
당시 통제영 12공방에서 만든 제품은 뛰어난 기술 덕분에 나라에 진상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때 그 기술이 지금도 남아 통영자개, 통영소반, 통영 갓 등 전국에서도
인정받는 통영의 자랑거리가 돼주고 있다. 지금 삼도수군통제영에는 말총을 엮어 망건, 탕건 등을
만드는 총방, 흑립을 이용해 갓을 만드는 입자방,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들고 공예품에 칠을 하는
칠방, 활집인 동개를 만들던 동개방, 쇠를 녹여 각종 철물을 제조하던 야장방,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 등을
만드는 소목방 등 12공방이 재현돼 있다. 12공방 체험행사와 재현행사를 통해 직접 제품을 만들어 보거나
제품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도 있다. 과거에 묻혔던 건물들이 제 이름을 찾고 제 의미를 찾았다.
공방은 숙력된 전문 장인들이 조총, 총통, 활, 화살, 활집, 말안장, 전립 등 전쟁에 쓰이는
물품은 물론 부채, 갓, 칠, 자개, 그림, 상자, 가죽, 신 등의 다양한 생활용품들도 생산했다.





공내헌 / 공방을 관리하던 공감의 집무실이다.












야자방으로 철물을 녹여 병기와 농기구를 만들었다.



걸음을 옮겨 내아군으로 들어선다.

내아군 영역에 들어서면 병고, 통제사의 집무실인 운주당이 있고 제21대 이완통 제사 시절
경무당과 함께 창건된 이 곳은 삼도수군의 전략과 행정이 치열하게 논의 되던 장소이다.

병고는 선조 36년 < 1603> 제6대 이경준 통제사때
통제영 설치와 함께 세워졌다. 통제영 병고는 당시에 화폐 기능을 하였던
옷감인 베나 무명을 보관하다가 통제영 말기에는 금전 출납만을 하였다.








많은 수고와 노력을 들여 복원한 삼도수군통제영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의지를 되새기게 하여 지금도 이곳에는
통제영을 거쳐 갔던 200여명의 통제사가 통영의 이름을 굳건하게 지켜주고 있다.



통제영 내부에 있는 운주당은
통제사의 집무실로서 작전을 수립하는 회의실이었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수군조련도와 명나라 신종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하사한
8종15물의 유물인 팔사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운주당 / 인조 23년 제21대 이완 통제사 때 경무당과 함께 창건하였다.
운주는 '운주유악지' 중에서 나온 말로 군마 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뜻으로
통제사가 통제영 군무를 보는 집무실이다.



경무당 / 인조 23년 <1645> 통제사의 작은 집무실로 경무당이라 한 것은
충무공의 뜻을 크게 우러러본다는 의미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내아는 통제사가 살던 살림집으로 안방, 건너방, 대청과 부억이 있다.





두룡포 기사비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두룡포는 원래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경준이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옴으로써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었다.
이 비석은 받침대 없이 비신(碑身)과 머릿돌로만 되어 있다.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제6대, 제9대 이경준통제사의
치적을 기록한 '이경준사적비'다


2014년 11월7일 통영시 무전동 873번지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했는데
이는 이례적인 일로 매몰 이유도 불명확하다. 내용적으로는
사적비, 선정비, 불망비가 각각 5기, 거사비, 선정비, 유애비, 거사비가 각각 2기, 불망비가 1기이다.



동백은 아작도 붉게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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