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3. 21:13ㆍ역사 탐방
미륵도 달아공원으로 가면서..

착량묘에서 통영 운하와 미륵산의 경치를 눈에 담은 뒤 좁은 언덕길을 내려오니 해저터널 입구가 보였다.
1932년 완공된 해저터널은 동양에서 처음으로 바닷속에 만들어진 터널이다.
통영의 미륵도는 희한하게도 해저를 통해서도 들어갈 수 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물목인 착량(鑿梁)은 임진왜란 당시 쫓기던 왜선들이
물길로 착각하고 들어왔다가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급히 땅을 파고 물길을 뚫어 도망쳤다는 곳이다.
그래서 '판데목'이라고도 하고, 그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은 왜군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여
'송장목'이라고도 불린다. 이후 일제는 이곳에 운하를 파서 물길을 넓히고 그 밑에 터널을 뚫었다.
일제가 다리를 놓지 않고 굴을 판 것은 왜군들이 죽은 곳 위로 조선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작년 문화재청은 이 해저터널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예고하면서
'통영 태합굴(太閤掘) 해저터널'이란 일제시대 때의 명칭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썼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태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존칭이라는 지적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문화재청장이 사죄하고 '통영 해저터널'로 고치기는 했으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어찌 비단 이뿐이랴. / 유성문의 로드포엠 그리운 나폴리에서
달아공원은 통영시 남쪽의 미륵도 해안을 일주하는 23km의 산양일주도로 중간에 있으며
달아라는 이름은 이곳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지금은 달 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통영시민들은 보통 "달애" 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륵도 최 남단 해안가에 자리 잡은
달아공원은 산양일주 도로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바다 경치를 즐기다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이곳에 서면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위에 점점이 떠 있는 한산,
욕지, 샤량등 3개 도서면 관내의 대다수 섬들을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전경은 가히 일품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고 한다.
왼쪽은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이 왜선 21척을 격파해 승리한 당포해전 전망대 방향인데
두 길은 나중에 다시 만난다. 신선대 전망대는 이름에 걸맞은 조망이 열렸다.
당포해전은 거북선을 주축으로 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이 적선 21척을 모두 격침시킨 해전으로
거북선의 우수성을 입증한 전투였다. 안내판에 당포해전이 벌어졌던 곳과 함선의 이동 경로가 꼼꼼하게 나와 있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 달아공원 전망대
당포 해전길의 종점인 달아전망대에서는 일출과 일몰은 물론 매물도와 비진도,
연대도 등 한려수도 섬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오른쪽으로는 한산대첩 격전지인 한산도가 보이고 , 왼쪽은 당포해전 격전지가 본인다
선생님 설명이 푸르고 넓은 바다를 바라 보니 한쪽 귀로 들어 오고 한쪽 귀로 흘러 나간다. ㅎ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섬을 헤아리며 이름을 찾아 맞춰보기도 하면서
우리나라섬도 유인도, 480개 무인도가 2910개로 3,000개 가 넘는다 하니
그 이름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섬이 참 많다.
달아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전쟁이라는 힘든 세월을 언제 겪었나
싶게 오랜 세월이 지나니 평온하고 조용했다 , 그 많은 세월을 견디어 온
인내의 힘이 바닷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으리라.





달아공원에서 조금 내려오면 관해정이라는 정자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달아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뿐더러 한려수도의 장관도 감상하기 좋은 정자로
지난 1997년에 세워졌다. 또 동쪽으로는 멀리 거제도가 서쪽으로는 남해도가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유명한 말.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한 말이다.

오는 길에 들른 영운항 . 우리나라 멍게 80% 가 이곳 양식장에서 나온다 한다.
한산도 외항을 바라보기 위해서 들른 곳이다.



양식장에서 잡아 올린 멍게를 선별하는 기계이다.
양식장 수심 10m에서 2~3년을 잘 자라서 잡아 올린 멍게를
기계로 선별 작업을 거쳐 사람이 작업을 한단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 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아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했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바닷빛이 고운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타는 듯 붉은 동백꽃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중에서

'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을 어찌 짧은 글 속에 다 담을 수가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리운 나폴리'라는 한마디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폴리'가 그냥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아니라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때,
통영은 가장 나폴리답다.
누군가의 글에서 통영을 이리 말했다.

도남항
통영유람선터미널 바로 옆 동개섬 전망대에서 독특한 모양의 연필등대가 보인다.
토지의 박경리 , 청마 유치환, 현대시의 김춘추,
영원한 연인 이영도와, 돌아오지 못한 윤이상과, 소요하던 이중섭과,
전혁림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이가를 배출한 예향
통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연필 모양으로 제작된 이 등대는 1986년 점등 이후
도남항의 상징이 되었다. 전망대가 있는 동개섬은 원래 무인도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매립되어 지금은 육지 속 공원이 되었다. 조선 영조 때 통제사가 휘하 장수들과 활을 쏜 후
바위에 '동개도' 라 새겼다는 유래가 전해졌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
남해의 다도해를 통해 세계로 열려 있는 자연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운 항구도시
이곳에 전국 유일의 연필등대를 세우는 의미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통영은
한국의 기라성 같은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한 곳이다. 그중 특히 문필가의 배출 ,
유치환, 김상옥, 김춘추, 박경리 등 이 나라 현대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문필가들이 바로 이곳 통영 출신들이다. 오늘의 문필 활동은 펜이 생기기 이전
주로 연필을 주 필기구로 삼았다. 따라서 분필을 상징하는 연필형태로 등대를
설계하게 되었다. 문필가는 문필 활동의 결과물인 시나 소설로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캄캄한 바다에서 배가 항로를 따라 항해할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활을 하는 것은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이다.
문필가가 글로써 이 세상을 밝게 하는 것과 등대가 어둠을 밝혀 배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그 역할 면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마산지방해양항만청에서는 이곳 통영 바닷가에 새로 등대 하나를 세워
통영 문필가들의자긍심을 높이고 관광명소로서의지역적 특색을 담은
연필등대를 이 곳에 세워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한다.
2009년 , 10월 22일 만듬
국토해양부 마산지방해양항만청


방파제에 마주한 계류장의 요트 행렬은 최고의 장면을 연출하고 그 뒤로 보이는
' 금호리조트 통영마리나 ' 통영 국제음악당' 스탠포드호텔 앤 리조트 '가 서로
어우러지는 풍경은 마치 지둥해의 어느 항구 도시에 와 있는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태리의 나포리로 여행 온 관광객이 통영의 풍경 보다 못하다고 했다는 말이 실감이 나고 있다
미륵산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애들을 데리고 왔던 추억을 상기시킨다.
저녁 식사 후에 들른 도남항.

도남항 연필등대
2006년에 세워진 이 등대는 오늘도 이렇게 통영이 ' 문학의 도시' 임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도남항에도 어둠이 서서히 내려 앉고 있었다.



통영의 밤바다를 즐기기 위한 유람선도 보인다.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우리 고장 선창가는 길보다 사람이 많았소. - 유치환 '귀고(歸故)'
다찌집에서 지새운 밤은 어떻고, 새벽 서호시장 시락국집의 해장은 어떠했던가.
통영운하의 불빛과, 미륵도 달아공원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저녁놀은 어찌할 셈인가.
한산섬 달 밝은 수루와, 소매물도의 등대섬과, 사량도의 야광바다는 또 어쩌란 말이냐.
아아, 나는 더 이상 말 못하겠다. 돌아서자마자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통영과,
통영을 향한 그 끝 모를 그리움을.... 누군가가 통영을 이렇게 그리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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