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한산대첩광장 / 이순신공원

2026. 5. 14. 21:53역사 탐방

 
 
 둘째날

 

 

 
푸른 바다를 마주한 한산대첩광장은 통영 관광의 심장부 , 통영 시내 강구안의 남단에
자리잡고 있어 주변 명소들과 연결성이 편리하다. 성웅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승리를
기리는 역사적 상징물로 광활한 광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는 28인의 흉상을 포함한
31개의 조형물이다.수군의 용맹스런 모습은  400년전 해전의 긴박했던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했으며 흉상 뒤편에는 문주위에 거북선과 판옥선의 형상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이순신 장군의 시가 새겨진 병풍선 8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조형물들의 다양한 표현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중심으로 포를 쏘는 포수, 활을 쏘는 사수, 깃발을 든 기수, 그리고

노를 젓는 격분한 모습까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장 바닥에 새겨진 글씨와 좌초, 우초라는 글자가 보인다.
“학인진”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는데, 이는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진형으로
이순신 장군의 전술 중 하나로, 한산도 대첩 승리의 전략이었다.

 

조선시대 통제영 소속 군선들이 정박했던 병선마당을 재현한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활 쏘는 장수,노젓는 병사 등

조선 수군의 군상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을 대표하는 업적 중 하나는 한산도대첩이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후, 조선 함대를 학인진으로

배치하여 적을 포위하고 화포를 집중적으로 사격했습니다.
일본군은 접근전을 시도하였으나, 조선 함대의 화력과 포위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했습니다.

 
한산도대첩은 일본의 수륙병진 전략을 무력화하고

남해 해상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또한 전라도 방어와 해상 주도권 확립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산대첩광장에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이순신공원으로 향한다.

이곳 남해안은 이순신장군의 흔적들을 빼놓고 역사적인 가치를 논할 수가 없다.
 
이순신공원은 이충무공의 정신을 기리는 공원으로 통영시 동호항방파제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연 49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통영시의 대표 관광지이다. 1592년 8월 14일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해상주도권을 다툰 전투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
대승하여 식량 보급로를 확보하고 일본 수군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든 임진왜란의 최대 승첩지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 중앙에 정자가 우뚝 자리하고 있으며 청동으로 만든 높이
17.3m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통영해상순직장병 위령탑,
해안 수변데크길, 수국 산책로, 무장애나눔길, 잔디광장, 어린이놀이터 등의 시설이 있다.
북쪽은 망일봉이, 남으로는 호수 같은 통영항과 한산대첩의 학익진이 펼쳐졌던

바다의 풍광이 아름답다.
 

 

한산대첩이란?

1592년(선조 25) 4월 일본군은 수륙병진계획으로 조선을 침범하였다. 그러나 그들 수군이 남해 · 서해로 침범하던 중 옥포(玉浦) · 당포(唐浦) · 당항포(唐項浦) · 율포(栗浦) 등지에서 연전연패하였다. 그러자 수군의 유능한 장수였던 와키자카[脇坂安治]는 정예 병력을 늘려 73척을 이끌고 거제도 등지를 침범하였다. 수군장수였던 구키[九鬼嘉隆]도 42척을 거느리고 뒤를 따랐다.

일본 수군들의 동향을 탐지한 이순신은 7월 5일 이억기와 함께 전라좌우도의 전선 48척을 본영(여수) 앞바다에 집결시켜 합동훈련을 실시하였다. 다음 날인 7월 6일 본영을 출발해 노량(露梁: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 이르러 원균이 이끌고 온 7척과 합세하니 3도의 전선은 모두 55척이었다.

 

7월 7일 저녁 당포 앞바다에 이르러 목동 김천손(金千孫)에게 일본 전선 70여 척이 견내량(見乃梁: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8일 한산섬 앞바다에 이르러 이를 확인하였다. 그 때 일본 수군의 세력은 대선 36척, 중선 24척, 소선 13척 등 모두 73척으로서 지휘관은 수군장수 와키자카였다.

 

이순신은 견내량 주변이 좁고 암초가 많아서 판옥전선(板屋戰船)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 한산섬 앞바다로 유인해 격멸할 계획을 세웠다. 먼저 판옥전선 5, 6척이 일본 수군을 공격하여 반격해 오면 한산섬으로 물러나면서 유인하였다. 일본 수군들은 그 때까지 패전한 것에 대해 보복하려는 듯 의기양양하게 공격해 왔다.

 

싸울 기회를 포착한 이순신은 모든 전선이 학익진(鶴翼陣)을 짜서 공격하게 하였다. 여러 장수와 군사들은 지 · 현자총통(地玄字銃筒) 등 각종 총통을 쏘면서 돌진하였다. 싸움의 결과 중위장 권준(權俊)이 층각대선(層閣大船) 1척을 나포하는 것을 비롯해 47척을 분파(焚破)하고 12척을 나포하였다. 아군의 압도적 공세에서 겨우 살아남은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근처의 육지로 달아났다.

 

이 해전은 조선 수군의 큰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격전 중 조선 수군의 사상자는 있었으나 전선의 손실은 전혀 없었다. 이 해전을 진주성대첩(晉州城大捷, 1592.10.5.∼10.) · 행주대첩(幸州大捷, 1593.2.12.)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부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바닥에 그려진  통영  바다의 해전,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설명으로 그 때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어르신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이 그저 감동스럽다.

 

 

                             존경심을 가지고 우러러 바라본다.  높이 서 있는 이순신장군의 모습을.

 

 

설명하기 어려운, 멋지고 짙푸른 바다와 잘 조경해 놓은 공원의 모습은 

외국의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우리 선생님 많은 걸 보여 주고 싶어 6시에 아침 먹고 출발해서 긴 하루를 만든다.
나도 힘든데 지팡이 집고 다니시는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그 열정에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역사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15) 2026.05.18
고현성  (16) 2026.05.16
미륵도 / 당포해전 흔적을 찾아 달아공원 전망대로  (19) 2026.05.13
세병관  (11) 2026.05.12
충무 / 삼도수군통제영역사관  (15) 202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