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성

2026. 5. 16. 22:36역사 탐방

 

이순신 공원에서 거제로 넘어 와서 고현성으로 왔다.

 

 

 

 

 

 

고현성(古縣城)

고려 말엽 원종 12年(1271) 왜구의 침범으로 거제현의 거제도민은 모두 거창의 가조현으로

피난갔다가 조선 세종 4年(1422) 태평성세로 사등성에 돌아왔으나 성이 협소하여 고정부에다

거제읍성을 왕명에 의하여 동왕 14년(1432)에 낙성하고 관아 40칸을 건립한 거제성인데

현종 5年(1664) 고현면과 함께 고현성으로 개칭하였다.
선조 25年(1592) 임진왜란으로 5月 7日 옥포대첩에서 왜선26척을 격침당한 왜패잔병이

거제읍성을 공격하여 5일후인 12일 성주 윤승보가 전사하고 함락되고 현종 5年(1664) 폐성하고

관아를 서부면으로 옮기니 고현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1950年 6.25 사변으로 11月 27日 UN군 거제도 포로수용소설치에 따라 성벽을 헐어 골재로

활용 둘레 2,045m에서 계룡산 밑에 남아있는 740m의 성벽과 성내 27,141㎡를 1979年 5月 9日

지방기념물 제46호로 지정하였고 허물어져 있는 성벽을 1993년부터 연차로 복원공사를 하고 있으니

이 성은 본래 거제읍성이었고 거제시청이 자리하고 있으니 거제성으로 환원해야 한다.

 

= 인터넷과 선생님 말씀 중에서 =


경상남도 기념물 46호로 지정된 이곳의 유적 설명판을 보면 단종 1년(1453년)에 완공된 음성으로

둘레가 921m, 동.서.남 세곳에 성문이 있었다고 하니 해미읍성 같은 모습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문 앞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만들고, 성둘레에는 방어를 위해 해자를 둔

전형적인 조선 시대 읍성이었습니다. 고현성은 임진왜란으로 함락되어 현종 5년(1664) 거제면으로

관아를 옮길 때까지 210년간 읍성으로 사용되었으며, 한국전쟁까지 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현 지역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지금은 600m 성벽만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거제시청의 부속 시설 같은 존재로 보일 수 있지만, 성루에 올라 성을 한 바퀴 돌아보면

거제의 풍광도 즐기도, 역사의 향기도 맡을 수 있습니다.

축성 후 210년 동안 거제지역의 중심지였던 고현성은 임진왜란으로 왜군에 함락되고

불타면서 관청의 기능을 잃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훼손돼 현재 북문과

북쪽 성곽 일부와 서쪽 성곽, 남쪽 성곽 일부만 복원된 상태로 성안은 주변 시민들이

소소한 작물을 재배하는 경작지로 사용하고 있다.

3개의 성문 중 유일하게 복원한 북문 누대인 계룡루는 시민공원을 찾는

관광객들의 쉼터로 자리하고 있다.

 

 

 

 

 

거제시청 옆 시민공원에 자리 잡은 거제의 대표적인 읍성인 고현성은 배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성문 앞을 가리어 빙 둘러쳐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인 옹성, 돌출시켜 쌓은 성벽인 치,

성 밖으로 둘러판 못인 해자를 갖춘 전형적인 조선 전기 읍성 구조를 갖추고 있다.

 

 

 

 

 

 

 

 

 

 

 

 

거제도는 과거부터 왜적을 막는 중요한 군사 요지였다.

이순신장군이 첫 해전의 승리를 거둔 옥포가 거제이며,

원균이 처참한 패배를 당한 곳도 거제의 칠전도입니다.

여기에 한국전쟁의 북한군과 중공군의 포로를 수용한 곳도 있으니

거제는 한국사에서 전쟁 박물관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