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 21:26ㆍ역사 탐방
2026년 5월16일 ; 원주 답사
인 원 ; 40명
인목대비 부친 김제남 -- 흥원창 -- 고구마를 가져온 조암 -- 법천사지 -- 운석 원천석
김제남은
조선 중기의 인물로 문신이며 외척이다.
출생1562년(명종 17) 사망1613년 7월 18일(향년 51세)(음력 광해군 5년 6월 1일),
사사형묘소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시호의민(懿愍)본관연안(延安)
중종조의 영의정 김전의 증손이며 김안로 의 재종손(再從孫, 사촌 형제의 손자)이고
세종의 4남인 임영대군의 외5대 손이자 인목왕후 의 아버지,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의
외할어버지자 의천왕비의 11대조.
1602년 차녀가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가 되어 연흥부원군이 되었으며 김제남은 문과에

김제남의 능으로 올라가는 길.

증조부와 재종조부는 재상이었으며, 장남 김내는 정3품 청주목사를 지냈고,
둘째 사위는 조선의 국왕이었으며, 맏사위와 며느리들도 모두 조선 중후기의
당대 최고 명문가 출신이었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다시피 계축옥사에 휘말려 가족들이
거의 멸문에 가깝게 몰살당했다가 후손들 중 몇몇이 살아남으면서
간신히 가문의 대를 이어나갔다


능에서 내려오면 김제남의 사당인 의민사와 재실이 있다.

김제남의 재실





의민공사우는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지정로에 위치한 사당이다. 1965년에 사우를
건립하였다가 화재로 두 차례 소실되었으며 이를 다시 1997년에 신축하였으며
연안 김 씨 청주공파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민사는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을 모신 사당이다. 그는 계축옥사 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인물로 , 후대에 그 충성과 억울함이 인정되면서 이 사당이 세워졌다.
'의민' 이라는 호도 그 뜻이 담겨 있으며 의롭지만 억울하게 죽은 인물을 기린다는 뜻이란다.



김제남 신도비는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신도비이다.
1984년 6월 2일 강원특별자치도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신도란 신령의 길이라는 뜻을 의미한다.
김제남은 선조의 장인이며 인목대비의 아버지, 비운의 왕자인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로
멸문의 위기를 당했던 장본인이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투쟁에서 자식 3형제와 사약을 마셨고
부관참시의 치욕을 겪었다. 인조반정 후에야 명예가 회복되어 그를 위한 사당이 지어졌고,
이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3m가 넘는 대형 비석은 머릿돌과 몸돌이 커, 상대적으로 받침돌은
왜소해 보이나 전체적으로 단정한 느낌을 풍긴다. 몸돌에 새겨진 김제남의 흔적은 세월의 풍파 앞에서
지워져 이제는 판독이 어렵다. 받침돌은 용이 아닌 거북이 형상으로 거북의 머리를 뒤로 돌려 비석을
돌아보는 모양인 것이 이색적이며,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 있다.
- 부관참시: 예전에,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을 다시 극형에 처하는 형벌로,
- 관을 쪼개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걸던 일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양식적 특징 :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구조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비를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어 재미있는 모습이며,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 있다. - 원주시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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