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탐방(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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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1919년 3.1운동으로 잡혀 온 수감자가 갑자기 늘어나 1920년대 초에 새로지은 2층 옥사이다. 왼쪽부터 10,11,12옥사로 불렀다.수감자 감시와 통제를 쉽게 하려고 원형 감옥 구조로 만들었다. 가운데 중앙간수소를 중심으로 각 옥사를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한 형태이다. 복도 천장에는채광창을 내어 수감자의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했다. 중앙사 : 옥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건물로 1920년대 중반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잔존해 있는 10, 11, 12옥사와 연결되어 있고 중앙 간수소의 기능을 맡았다. 1층은 간수들의 사무 공간, 2층은 수감자들의 사상교육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패통 수감자가 급한 용무가 있거나 담당 간수를 부를 때 사용한 일종의 신호기로 감방문 옆에 설치되어 있다.감방 안에서 조..
2024.06.26 -
서대문 형무소
관람료 (단체는 20명 이상 적용) ㆍ어른 3000원, 단체 2400원 청소년 1500원, 단체 1200원ㆍ어린이 1000원, 단체 800원ㆍ군인 1500원, 단체 1200원ㆍ무료 - 경로우대자 65세이상, 6세이하 유아, 장애인, 국가보훈대상자 서대문 형무소는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 투사와 해방 이후 군사 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하였던 과거 악명 높았던 감옥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987년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으로 이전하기까지 사용되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기도 하다. 크기는 부지 19만 8,348m2, 연건축면적 26,446m2, 수감 가능인원 3,200명. 지금의 역사관은 당시 ..
2024.06.23 -
역사 탐방 , 독립문
5월 25일 인원 34명 독립 선언문 서재필 동상서재필선생은 1896년 4월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을 발간하였고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 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또한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독립사상과 민권 사상을 크게 신장시켰고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에 언론관련 단체들이 총집결하여 건립한 동상이다. 독립문 바로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언론관련..
2024.06.20 -
경복궁 역사탐방
4월20일 : 경복궁 인원 ; 42명 10시에 경복궁역에서 만나서 가기로 했는데 비가 내렸다.천만 다행히 비는 세차게 내리지 않고 부슬비가 내려 다니는데 큰 지장은주지 않았지만그래도 우산을 펴고 다니니 걸리적 거린다.다른 단체도 보이고 한복을 빌려 입은 젊은이들은 비가 오는것도 아량곳 하지 않는다. 이 팜프렛은 중국의 자금성과 경복궁을 비교하며 설명하려고 선생님이 가져오셨다. 자금성의 크기는 동서 760m, 남북 960m로, 넓이가 72만 제곱미터(m²)다.경복궁은 동서 500m, 남북 700m로, 면적은 43만 2,703 제곱미터(m²)다.대략 자금성이 경복궁의 1.5배 크기라 할 수 있다. 자금성은 우리나라 경복궁보다 크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자금성 갔을때가이드가..
2024.05.09 -
공주 마곡사 24. 4. 2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 일주문을 바라보며 들어가자니 초파일이 가까워옴을 느끼게한다.연등들이 줄지어 달려 있고 계곡의 물소리는 마음을 한층 상큼하게 해준다.마곡사의 봄은 산중이라 아직 올라오지 못하고 산 허리 쯤에 머물러 있나보다.기대했던 벗꽃은 어디에도 없고 고요함만이 들떠있던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 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그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
2024.04.07 -
충렬사
청주 충렬사(충청북도 지방기념물 16호 )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선조 28년(1595)에 동래에서 청주로 묘소를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사당을 창건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송상현의 본관은 여산, 호는 천곡, 시호는 충렬이다. 국가의 위난을 죽음으로 지켜 시호를 ‘충렬’이라 하였다.충렬공은 선조 9년(1576) 문과에 급제해 여러 요직을 거친 후, 선조24년(1591) 동래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14일에 동래성을 공격하며 항복을 권했으나, 끝까지 항전하다가 15일 순절하였다. 왜장도 송상현의 충절에 탄복하여 동문 밖에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충렬사 뒷산에는 송상현의..
2024.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