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탐방(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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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어극 40년 칭경 기념비전
역사탐방8월17일 인원 / 46명 기념비전(紀念碑殿)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42-3에 있는 비각으로, 비각 안에는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보존되어 있다. 정식 명칭은 고종 어극 40년 칭경 기념비전(高宗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殿)이며, 통상 기념비전이라 불린다. 세종대로사거리에서 광화문 방면으로 바라보는 우측에 있고,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4번 출구로 나가면 나온다. 1969년 7월 18일에 사적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비(碑)의 정식이름1902년 고종황제가 기로소(耆老所)에 든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碑)를 세우니,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망육순 어극사십년 칭경기념비 란 긴 이름이 비(碑) 의 정식명칭이다. 고종(재위 1863∼1907)이 왕이 된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2024.08.21 -
종묘
6월 15일 인원 ;33명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유교건축종묘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종묘는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 그리고 실제로 왕위에오르지는 않았으나죽고 나서 왕의 칭호를 올려받은 왕과 그 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행하던왕실의 사당이다.종묘는 인류의 문화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에 의거하여 유네스코에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세계 유산이란 당해 문화재가세계적으로 특출하고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보호되어야 할 유산을 말한다.종묘는 조선시대 역대왕과 왕후의 신위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유교적 전통 신전으로1395년(조선 태조 4년)에 지어졌으며,그 후 매년 이곳에서종묘 제례 의식을 올리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종묘 들어기가전 종묘공원 안에는..
2024.06.30 -
서대문 형무소
옥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오니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외국에 나가면 그렇게 반가웠던, 평상시에 덤덤했던 애국심이 발동을 한다.잠깐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독립운동을 했던 순국선열들을 생각해본다.숙연해지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묵념을 보내본다. 한센병사는 다른 사람에게 옮길까봐 동떨어져 있다. 사형장 : 공작사 북서에 있는 한센병사와 9옥사 사이를 지나면 오른편에 건물이 하나보이는데, 형무소 확장 이후 지어진 사형을 집행했던 곳이다. 지상1층과 지하1층의 일본식 목조건물로 1922년 전 후에 이전된것으로 추정된다.사형장은 5m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형무소 안에서도보이지 않게 차단되어 있다.1층 안에는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마루판과교수형에 쓰이는 줄, 가림막 뒷쪽에 마루판..
2024.06.28 -
서대문 형무소
1919년 3.1운동으로 잡혀 온 수감자가 갑자기 늘어나 1920년대 초에 새로지은 2층 옥사이다. 왼쪽부터 10,11,12옥사로 불렀다.수감자 감시와 통제를 쉽게 하려고 원형 감옥 구조로 만들었다. 가운데 중앙간수소를 중심으로 각 옥사를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한 형태이다. 복도 천장에는채광창을 내어 수감자의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했다. 중앙사 : 옥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건물로 1920년대 중반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잔존해 있는 10, 11, 12옥사와 연결되어 있고 중앙 간수소의 기능을 맡았다. 1층은 간수들의 사무 공간, 2층은 수감자들의 사상교육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패통 수감자가 급한 용무가 있거나 담당 간수를 부를 때 사용한 일종의 신호기로 감방문 옆에 설치되어 있다.감방 안에서 조..
2024.06.26 -
서대문 형무소
관람료 (단체는 20명 이상 적용) ㆍ어른 3000원, 단체 2400원 청소년 1500원, 단체 1200원ㆍ어린이 1000원, 단체 800원ㆍ군인 1500원, 단체 1200원ㆍ무료 - 경로우대자 65세이상, 6세이하 유아, 장애인, 국가보훈대상자 서대문 형무소는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 투사와 해방 이후 군사 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하였던 과거 악명 높았던 감옥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987년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으로 이전하기까지 사용되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기도 하다. 크기는 부지 19만 8,348m2, 연건축면적 26,446m2, 수감 가능인원 3,200명. 지금의 역사관은 당시 ..
2024.06.23 -
역사 탐방 , 독립문
5월 25일 인원 34명 독립 선언문 서재필 동상서재필선생은 1896년 4월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을 발간하였고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 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또한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독립사상과 민권 사상을 크게 신장시켰고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에 언론관련 단체들이 총집결하여 건립한 동상이다. 독립문 바로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언론관련..
202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