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이곳저곳(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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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산 사고
꼬불 꼬불 긴 산길을 숨가쁘게 올라온 버스는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주차장 주위를 둘러 보니 온통 나무들은 예쁜 옷으로 갈아 입고 관광 온 손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모처럼 같이 여행을 온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1시간 30분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안국사를 다녀오려면 빠른 걸음으로올라가야 하는데 우리 셋은 그럴 힘이 없어 올갈 수 있는데 까지만 갔다오기로 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국사를 안 보면 어떤가 ?이렇게 아름다운 산길을 걸어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적상호적상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댐으로 막아 만들어진 인공호수로 해발고도 860m에 위치한다.적상호를 건설한 이유는 아래 해발 270m에 있는 무조호와 양수발전을 위한..
2024.11.20 -
무주 구천동 241105
무주는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및 경상남도 거창군, 서쪽은 진안군, 남쪽은 장수군, 북쪽은 충청남도 금산군 및 충청북도 영동군과 접하고 있다. 친구 둘과 떠난 가을여행이었다. 동생들이랑 여행을 많이 다니니 친구랑은 아주 오랫만에 떠난 여핼길이었다. 친구가 오래 전에 적상산 안국사를 다녀 왔는데 가을색이 너무 예쁘다고 해서왔는데 그 친구 말이 올해는 단풍이 예쁘지 않다고하지만 그래도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길을 쭉 따라 올라가다 보니 차량통제구역이 나온다. 우리는 돌아서서 오던 길로 다시 내려 왔다.이제 운전하는 친구도 없고 국내여행 패키지로 왔더니 시키는 대로고분고분 따라야 한다. ㅎㅎ 아마도 산으로 오르는 길인가 보다. 은행잎은 다 떨어지고 은행만 떨어지기 싫은지 매달려 있다. ..
2024.11.16 -
콩돌 해안
콩알만 한 자갈들이 바닷가에 널려있어 콩돌해안이라 불리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해안의 길이는 800m, 폭은 30m 정도이며, 콩돌들은 백령도 지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규암이 부서지고 해안 파도에 의해서 닳고 닳아서 만들어진 해안으로 콩돌을 만들어 낸 투명한 자갈이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피부염에 특효가 있다는 자갈찜질을 체험할 수 있다. 해안경사가 급해 갑자기 깊은 곳이 있으며, 물이 빠진 간조시간에는 해안 끝 절벽에 움푹 파인 곳이 생긴다. 파도에 밀려 돌이 구르는 소리는 어느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 더 청량하다. 콩돌 해변은 아름다운 해변이다. 수려한 경관이 있어서 천연기념물 392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콩돌해변은 전체가 국가 보호를 ..
2024.11.14 -
두무진
1997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약 4㎞에 걸친 해안선에 따라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높이 50여m 내외의 규암절벽을 일컫는 이름이다.두무진이라는 명칭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 같이 생겼다’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칭하였다가 뒤에 ‘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두무진(頭武鎭)이라 개칭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무진에 솟아 있는 바위들은 그 모양에 따라 코끼리바위 · 장군바위 · 신선대 · 선대암 · 팔각정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1612년(광해군 4)은 선대바위를 보고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그의 《백령지 白翎誌》에서 극찬했을 정도로 기암괴석의 모양이 기이하고 훌륭하다. 석양에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두무..
2024.11.13 -
중화동 교회
1896년 한반도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 중화동 교회이다. 중화동교회는 한국 기독교 역사 사적지 제15호로 지정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총회(총회장 오정호 목사) 소속 교회다.예장통합 총회(총회장 김의식 목사) 소속의 서울 새문안교회(이상학 목사)에 이어 1896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장로교회다.역사적 가치를 지녔음에도 교회는 수차례 개·보수된 탓에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다고 한다. 종을 보니 어릴적 교회에서 울리던 종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것 같다. 중화동교회 최초의 세례교인이자 23년간 담임목사로 사역하기도 한 ..
2024.11.08 -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2010년 3월26일에백령도도 해상에서 대한민국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북한의 어뢰에 의해 폭침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2010년 4월 24일 17시 기준으로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한편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수색과정에서 3월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김현진 상사, 김정호 상사는 실신해 치료를 받았다. 4월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
20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