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시(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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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를 보려고.
5월의 장미 / 이해인 수녀님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5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5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당당하게 장미꽃 사이에서 소박하게 피어있는 씀바귀꽃. 안양천의 장미는 예뻤다. 누구의 눈낄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너그러움. 만지지는 말고 눈으로만 보라고 가시를 세워 ..
2023.05.22 -
5월
5월 이외수 아이야 오늘처럼 온통 세상이 짙푸른 날에는 지나 간 날들을 떠올리지 말자 바람이 불면 허기진 시절을 향해 흔들리는 기억의 수풀 시간은 소멸하지 않고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는다 연락이 두절된 이름들도 나는 아직 수첩에서 지울 수 없어라 하늘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을 앓으며 뭉게구름 떠내려 가고 낙타처럼 피곤한 무릎으로 주저앉는 산그림자 나는 목이 마르다 아이야 오늘처럼 세상이 온통 짙푸른 날에는 다가오는 날들도 생각하지 말자 인생에는 도처에 이별이 기다리고 한겨울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 그 아래 어깨를 늘어뜨리고 모르는 사람 하나 떠나가는 모습 나는 맨발에 사금파리 박히는 아픔을 배우나니
2023.05.01 -
사월의 시
안양천에서. 사월의 시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 입니다. 세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맘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적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 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 합니다. 사월이 문을 엽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하렵니다. 왜 이 구절이 눈물이 날만큼 가슴에 와 닿는지 ..
2023.04.08 -
목련
4월의 노래 - 박목월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데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이 되면 목련꽃과 함께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수원에서 서울로 고등학교를 와서 친구가 없을때 다행이 같은 학교를 다니는 고1 짜리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같이 등교를 하면서 음악 교과서에 있는 이 노래를 조용히 부르면서 학교를 가곤 했다. 지금은..
2023.04.04 -
법정스님
고요를를 그리다 . 장영숙 연일 아침 안개 하오의 숲에서는마른 바람 소리 눈부신 하늘을 동화책으로 가리다. 덩굴에서 꽃씨가 튀긴다. 비틀거리는 해바라기 물든 잎에 취했는가 쥐가 쓸다 만 멕고모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다. 법당 쪽에서 은은한 요령소리 맑은 날에 낙엽이 또 한 잎 지고 있다. 나무들은 내려다 보리라 허공에 팔던 시선으로 엷어진 제 그림자를 창호에 번지는 찬 그늘 백자 과반에서 가을이 익는다. 화선지를 펼쳐 전각에 인주를 묻히다 이슬이 내린 청결한 뜰 마른 바람 소리 아침 안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2023.03.27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