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시(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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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가을이 오면 그대 기다리는 일상을 접어야겠네 가을역 투명한 햇살 속에서 잘디잔 이파리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탱자나무 울타리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러드나니 그대 이름 지우고 종일토록 내 마음 눈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털구름 한 자락으로나 걸어두겠네.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9월의 기도 / 이해인 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2023.09.03 -
죽은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화려하게 꽃피는 봄날이 아니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가을이 되게 하소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사고나 실수로 나를 찾아오지 않고 허락하신 삶을 다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하늘은 푸르고 맑아 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한 날이 되게 하소서 늙어감조차 아름다워 추하지 않고 삶을 뒤돌아보아도 후회함이 없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 쓸데없는 애착이나 미련이 없게 하소서 병으로 인하여 몸이 너무 쇠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기력이 있고 건강한 때가 되게 하소서 나의 삶에 맡겨주신 달란트를 남기게 하시고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며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고 베풀며 살게 하소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주님의 구원하..
2023.08.15 -
평생 마음으로 만나고 싶은 한사람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어가는 쓸쓸한 길이라지만 내가 걷는 삶의 길목에서 그래도 평생을 함께 걷고 싶은 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이을 만나기보다는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그저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고단하고 힘든날에 마음으로 다가가면 살포시 내등을 토닥여주는 다정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부족한 내가 위로해 주기 보다는 그의 위로를 더많이 받아 가끔은 나보다더 나를 아껴주는 마음이 넓은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기도로서도 채워지지 않는 허약한 부분을 어느 한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만나서 기쁜날보다 슬픈날에 불현듯 마음이 찾아가면 보듬어주는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ㅡ 내곁에 너를 붙잡다 중 ㅡ 인생이 힘든 이유는 문제를 직면해서 푸는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 가지 않은 길 중에..
2023.05.26 -
장미를 보려고.
5월의 장미 / 이해인 수녀님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5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5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당당하게 장미꽃 사이에서 소박하게 피어있는 씀바귀꽃. 안양천의 장미는 예뻤다. 누구의 눈낄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너그러움. 만지지는 말고 눈으로만 보라고 가시를 세워 ..
2023.05.22 -
5월
5월 이외수 아이야 오늘처럼 온통 세상이 짙푸른 날에는 지나 간 날들을 떠올리지 말자 바람이 불면 허기진 시절을 향해 흔들리는 기억의 수풀 시간은 소멸하지 않고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는다 연락이 두절된 이름들도 나는 아직 수첩에서 지울 수 없어라 하늘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을 앓으며 뭉게구름 떠내려 가고 낙타처럼 피곤한 무릎으로 주저앉는 산그림자 나는 목이 마르다 아이야 오늘처럼 세상이 온통 짙푸른 날에는 다가오는 날들도 생각하지 말자 인생에는 도처에 이별이 기다리고 한겨울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 그 아래 어깨를 늘어뜨리고 모르는 사람 하나 떠나가는 모습 나는 맨발에 사금파리 박히는 아픔을 배우나니
2023.05.01 -
사월의 시
안양천에서. 사월의 시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 입니다. 세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맘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적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 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 합니다. 사월이 문을 엽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하렵니다. 왜 이 구절이 눈물이 날만큼 가슴에 와 닿는지 ..
2023.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