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성당(54)
-
강화도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은 일만 명으로 상징되는 한국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2002년 고 최기산보니파시오 인천교구장이 설립하였다. 일만 분의 순교자 중 이름을 남긴 분들은 고작 2천 여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즉 한국 순교자들의 대부분은 무명순교자라는 말이 되며, 이는 또한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은 초창기 조성 때부터 무명순교자길과 무명순교자상을 가꾸고, 건물을 무명관이라고 이름 짓는 등 무명순교자를 기억하고자 노력해 왔다. 또한 이곳은 성지가 아니라 순례지다. 그래서 이름이 현양동산이다. 자연과 하나되어 숲속에서 천천히 걸으며 기도할 수 있는 기도 동산이다. 따라서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은 ‘침묵의 순례지’라 불리기를 원한다. 침묵은 무명..
2023.10.27 -
국제 성지 해미
1866년(조선 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읍성 서문 밖의 돌다리에서 자리개질 등으로 처형하였는데, 숫자가 너무 많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를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신자들을 묶어 물속 둠벙에 빠뜨려 생매장을 시켰던 진둠벙과 해미천 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 무명순교자의 묘, 유해발굴지에 조성된 노천..
2023.06.11 -
새남터성지성당
‘새남터’는 억새와 나무가 많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자로 음역해서 사남기(沙南基)라고도 합니다. 조선 초기 군사들의 연무장이며 국사범들을 처형하던 곳이었는데, 4대 박해 동안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로 주님을 증거하였던 영광의 땅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이곳이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되다가 국가에 대하여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세조 2년, 1456년 단종을 다시 임금으로 올리려다 처형당한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이곳에서 충절의 피를 뿌린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후 1801년부터 1866년까지 무려 10명의 외국인 신부를 포함한 11명의 신부가 이곳 새남터에서 거룩한 순교의 피를 흘렸다. 조선 천주교회는 창설된 지 11년 만에 비로소 중국인 주문모 신부..
2023.05.30 -
은이성지 김가항성당
은이성지 김가항성당은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사제서품을 받은 상징적 장소이고 조선 내 천주교 확산의 계기가 된 한국 교회사의 중요한 건축물이다.원래 중국 상하이 김가항에 있었으며, 한 때 주교좌 성당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원 건물의 구조재 일부를 재사용하여 원형 회복 및 역사성 회복에 주안점을 두고 건립하였다. 성당이 위치한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세례를 받은 곳이고 사제서품 이후 사목활동을 했던 장소로서 김가항성당은 용인 근대사에 있어 가치가 있다. 무료하고 답답해서 찾아가 본 은이성지성당은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기도 하고 코로나로 인해 임시로 폐쇠되어 주변은 너무 한적하다. 어지러웠던 마음을 조용히 가라 앉히려고 촛불을 켜고 앉아 있으니 모든걸 내려놓는 겸손한 자세가 된다. '은이..
2021.03.13 -
전주성당
전라북도 전주시에있는 전동성당은 사적 제288호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豊南門)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전주성당은 보수중이었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유항검(柳恒儉)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
2020.12.21 -
가롯 유다
12 번, 가롯 유다의 집 섬과 섬을 잇는 풍경에 취해 느릿느릿 걷다보니 섬티아고라는 순례길의 마지막인 가롯 유다의 집에 도달해서 총12km를 이정표 따라 무사히 도달했다. 예수가 손수 뽑은 12 사도 중 한 사람. 『신약성서』 「마태 복음 」26~27 장, 그외의 복음서에 따르면, 그는 예수를 적대시하는 제사장들에게 은화 30전으로 예수를 팔았다. 최후의 만찬 시, 그 기도가 폭로되어 체포되었을 때, 솔선해서 예수에게 입을 맞춰 병사로 하여금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최후에 가서는 후회하여, 돈을 돌려주고 목매어 죽었다. 시몬의 집에서 이런 숲길을 지나면서 가롯 유다의 집이 있는 무인도 딴섬과 마주하게 된다. 밀물이 되면 고립된 섬이 썰물때가 되면 기적처럼 노둣길이 생긴다. - 모셔온 ..
2020.12.10